도박장인 줄… 어린이는 못 노는 어린이공원
대림동서 60·70대 수십명 ‘포커’
테이블·의자는 수풀에 숨겨놔
술 먹고 중국어 섞인 욕설 난무
“점심 술값 걸고 한판 더 하자고!”
19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어린이공원에서 60·70대 남성 4명이 공원 벤치에 담요를 깔아놓고 포커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부는 공원 수풀 구석에 숨겨놨던 플라스틱 테이블·의자를 꺼내 마작을 했다. 공원 한편에 ‘무단으로 쌓여 있는 의자들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의 계고장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에만 20여 명이 공원 곳곳에 자리를 잡고 내기 도박을 했다.

이곳은 동네 주민,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조성됐다. 하지만 도박판이 된 지 오래됐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본지가 지난주 대림동 일대 어린이공원 2곳을 둘러봤더니 적게는 10명, 많게는 50명이 매일같이 이곳에 모여 포커·마작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한 공원에 남아있던 노인들이 책상과 의자를 공원 수풀에 숨기고 “내일 보세”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한 노인은 “아침에 제일 먼저 오는 사람이 책상과 의자를 꺼내 판을 깔아놓는 게 규칙”이라고 했다.
지난 11일 오후 대림동의 또 다른 어린이공원에서도 중장년층 20여 명이 4명씩 조를 짜 도박을 하고 있었다. 게임에서 진 일부는 중국어를 섞은 욕을 하면서 서로 삿대질을 했다. 조선족 A(69)씨는 “중국은 공원에서 포커·마작을 하는 것이 일상 문화”라며 “자연스럽게 노인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공원에 모이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들이 돈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는 신고가 종종 들어온다”고 했다.
주민들은 쉼터를 빼앗겼다며 영등포구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대림동 주민 한영규(76)씨는 “아이들이 놀아야 할 공원이 어른들 도박판이 됐다”며 “술을 먹은 노인들도 많은 만큼 시비가 붙을까 봐 공원 근처엔 안 간다”고 했다. 초등학생 민모(9)군은 “할머니가 공원 근처엔 가지 말라고 해서 골목에서만 논다”고 했다. 인근 어린이집 관계자는 “벌건 대낮에도 고성이 들려와 공원 대신 실내에서만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영등포구청은 최근 도박판에 쓰이는 의자 등을 자진 철거하라는 계고장과 함께 사행성 게임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별도로 붙였다. 구청 관계자는 “다음 달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구에서 직접 치울 예정”이라고 했다. 영등포구는 불법 도박이 이어질 경우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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