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 중국 강제 개항시켰다
김진형의 해양시대
![청나라 시기 아편 중독이 늘자 중국 정부는 아편 수입을 차단하려 했으나 영국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관세 인하와 개항을 요구,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의 증기선 네메시스가 청나라 정크선을 파괴하는 모습을 그린 에드워드 던컨의 작품. [사진 위키피디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1/joongangsunday/20260221002126053ebzs.jpg)
역사적으로 본격적인 무역과 관세는 바다에서 시작됐다. 항구를 통제하지 못한 국가는 무역과 관세를 설계할 수 없었고,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무역과 관세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관세의 본질은 ‘가격’이 아니라 통제다. 누가 들어오고, 무엇이 들어오며, 어떤 조건으로 거래되는지를 결정하는 힘이다.
유럽의 대항해시대 이후 무역과 관세는 항상 해군력과 함께 움직였다. 18~19세기 영국은 이를 가장 정교하게 체계화한 국가다. 영국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고 무역과 관세를 설계했다. 자국 항구에서는 무역 통제와 선택적 관세를 적용했고, 상대국 항구에서는 무역 개방과 고정 관세를 강요했다. 이 구조는 협상이 아니라 군함이 강요하는 국제 질서였다.
이 원리는 트라팔가 해전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영국은 이 해전의 승리로 해상 경쟁자를 제거했고 그 순간부터 영국의 무역과 관세는 방어 수단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로 변했다. 관세는 영국 해군이 통제하는 바다에서 이미 결정된 결과를 숫자로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넬슨 제독. 제해권을 확보한 영국은 세계 무역과 관세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한다. [사진 위키피디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1/joongangsunday/20260221002127363osas.jpg)
이 승리의 역사적인 큰 의미는 유럽 대륙을 넘어 세계 무역과 관세 질서를 영국 중심으로 재편한 분기점이라는 것이었다. 이 승리 이후 영국은 더 이상 본토 방어에 해군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 해군은 전쟁 수단이 아니라 국제무역과 상업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력으로 전환되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 이후 영국의 국제무역은 급격히 팽창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해군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영국 상선은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의 방해 없이 항해할 수 있었다. 이 해상 우위는 곧 무역과 관세 구조로 연결되었다. 영국은 타국의 항구에 관세를 강요하기보다, 해상 통제를 통해 무역의 흐름 자체를 영국 항구로 집중시켰다. 무역과 관세는 국경에서가 아니라, 바다에서 이미 결정되었다.
이 시기 영국의 무역과 관세 전략은 선택적이었다. 본국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에는 낮은 관세를, 경쟁 상품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특히 면직물·철강·선박 관련 산업은 관세 보호와 해상 통제가 결합되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해군이 바다를 장악하자, 무역과 관세는 공격적 무기가 아니라 안정적 수입 장치로 기능했다.
이후 영국은 자유무역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조건부 자유였다. 바다를 지배한 국가만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다. 해군력이 없는 국가는 관세를 협상할 수 없었고, 해군력이 있는 국가는 무역과 관세를 설계할 수 있었다. 유럽 대륙이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영국은 바다에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아편 전쟁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완성된 영국 해양패권이 비유럽 세계에 직접 적용된 사건이다. 전쟁의 핵심은 영토가 아니라 무역과 관세이고 수단은 함선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아편 수출을 시작했다. 아편은 중국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중국 정부는 아편의 수입을 차단하려 했으나 영국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관세 인하와 항구 개방을 요구했다. 결국 영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아편 전쟁(Opium Wars)으로 이어졌다.
![네메시스호를 묘사한 판화. [사진 위키피디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1/joongangsunday/20260221002128633asiw.jpg)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 속 복수의 여신이다. 정의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불공평한 행위를 벌주는 일을 한다. 영국이 누구를 벌주기 위한 선박인지는 극비리에 동양으로 이동해서 벌어진 전쟁에서 알 수 있었다.
중국 해군의 주력 범선 정크선은 화물 적재량은 많았지만, 바람이 멈추면 이동도 멈췄다. 조류가 바뀌면 대형이 무너졌고, 강과 연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능력도 없었다. 1842년 6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가 양쯔강으로 유유히 거슬러 올라와 매복한 중국의 정크함 16척, 동원된 70척의 상선과 어선을 격파해 버렸다. 공포에 떤 중국인들은 네메시스를 ‘악마의 선박’이라 불렀다.
이 전쟁은 중국에 충격적이었다. 바다는 물론 연안과 육지 방어는 철제 증기선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전통적 군사 개념이나 무기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산업·기술 체제와의 격차가 노출된 순간이었다. 영국의 철제 증기선은 바람에 의존하는 선박과 달리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증기선은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보급과 차단 기동을 동시에 가능하게 했다.
트럼프 관세도 과거 패권국 떠올리게 해
산업혁명이 가져온 기술 혁신으로 선박은 목재를 다루는 ‘장인의 손길’ 시대에서 증기기관, 제철 기술, 공업 부품을 만드는 ‘기계의 시대’로 바뀌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목선에서 철선으로 넘어가면서 기술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조선 능력은 국가를 넘어 문명 간 격차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아편전쟁은 바람을 극복한 함선과 바람에 의존하는 함선의 싸움이었다.
중국의 패배로 항구는 강제로 열렸고, 무역과 관세 주권을 상실했다. 세관은 남았지만, 무역과 관세정책은 더 이상 중국의 것이 아니었다. 항만과 해양 통제권을 상실한 국가에 다가오는 몰락의 시작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두 가지의 무역 구조를 구축했다. 자국에는 관세 정책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상대국에는 관세 상한선을 강요했다. 이는 단순한 무역 확대가 아니라 관세 비대칭 질서의 형성이었다. 영국 상인은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현지 산업은 관세라는 보호 장치 없이 외국 상품과 경쟁해야 했다. 이 시점부터 관세는 더 이상 재정 수단이 아니었다. 관세는 무역 패권을 제도화하는 장치가 되었다. 항구 개방, 무역과 관세, 치외법권은 모두 해군력이 보증하는 하나의 세트였다.
지금 미국의 관세 정책은 예측이 쉽지 않다. 어느 날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다가, 다음 날은 관세를 무기로 꺼내 든다. 이 태도는 변덕이 아니라 과거 세계질서를 주도했던 국가가 했던 구조적 행동의 반복이다. 시간이 흘러도 국제 무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선박과 강력한 군함이 여전히 항만과 바다에서 존재하는 한, 관세는 힘을 가진 자가 강요하는 가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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