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늦은 때란 없어…1만 시간의 법칙 믿어요”
여성·한국인 TD는 사상 최초
경기장·채점 체계·일정 책임
최가온에 금메달 걸어주기도
미대 졸업후 광고회사 다니다
20세 넘어서 취미로 스키 시작
35세에 소치 대회 출전권 따내
“한국인, 여성은 안된다는 편견
깨려 남들보다 더 준비했죠”
◆ 밀라노 동계올림픽 ◆

최가온이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정상에 오르며 한국 설상의 새로운 역사를 쓴 지난 13일(한국시간) 시상자로 나서 금메달을 건넨 박 이사. 그는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이사는 최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지난해 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에서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 기술총괄책임자 제안을 받고 합류했다”며 “동계올림픽 최초의 여성·한국인 TD라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최가온에게 금메달을 직접 건네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 설상종목 발전을 위해 지난 20년간 몸을 바쳤던 게 이번 대회에서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동계올림픽 파크&파이프 TD는 경기가 열리는 코스와 구조물의 안전 기준, 채점 체계, 일정 등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결정권자다. 특히 하프파이프·빅에어·슬로프 스타일로 구성된 파크&파이프는 종목 특성상 점프대·레일·하프파이프 규격이 경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사전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동계올림픽은 선수들이 4년을 준비해서 오르는 무대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며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박 이사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키계 한 관계자는 “사전에 경기장 상태 등을 확인하는 테스트 이벤트가 열리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번 대회 운영이 잘되고 있다”며 “선수 출신의 날카로운 시각에 행정가로서 꼼꼼함이 더해진 결과”라고 박 이사를 칭찬했다.
박 이사는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분주히 뛰었다. 그의 판단이 빛난 경기는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이다. 3차 시기 진행 중에 폭설이 내린 슬로프 상황을 감안해 경기장을 정비했다. 눈에 보드가 걸리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다. 1차 시기에서 부상을 당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최가온은 2차 시기 때 DNS(출전하지 않는다)를 하면 3차 시기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해 경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때 박 이사가 최가온에게 “규정상 2차 시기를 DNS하더라도 3차 시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심판과 국제 TD 자격을 획득했다. 박 이사는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에서 2017년부터 이사로 재직 중인데 어떻게 하면 한국 설상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국제심판·국제 TD 시험에 응시했다”면서 “대부분의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지만 단 한 번도 아까웠던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파크&파이프 종목 선수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박 이사는 스키를 20대 초반에 시작해 35세 때 동계올림픽을 경험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지만 박 이사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선수와 행정가로서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는 감격을 맛봤다.
그는 “1만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남들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노력하니 30대 중반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며 “행정가로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과 여성은 안 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시간을 투자했더니 값진 결실을 이뤘다.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가온의 금빛 점프를 현장에서 지켜본 것에 대한 기쁜 마음도 감추지 못했다. 박 이사는 “이번 대회 책임자로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중립을 지켜야 했다. 3차 시기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썼을 때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며 “최가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 최고가 됐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17세에 동계올림픽 챔피언이 된 최가온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불모지로 불렸던 한국 설상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도 큰 힘을 보탰다. 선수와 행정가로서 국제 경험이 풍부한 그는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를 설득해 선수 육성 시스템을 바꿨다. 그는 “이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협회에 전달하는 것”이라며 “재능이 뛰어난 선수를 일찌감치 발굴해 키우는 꿈나무 제도와 연간 200일 동안 진행하는 해외 훈련 시스템 등이 한국 설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제2의 최가온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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