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풀가동, 미국 기업도 줄선다…K수출 숨은 공신 'MLCC·변압기'

황정일 2026. 2.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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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가려진 ‘수출 듀오’
미국·유럽 등지로 수출하고 있는 효성중공업의 초고압 변압기. [사진 효성중공업]
# 삼성전기는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 부산과 중국·필리핀에 있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장을 사실상 ‘풀가동’했다. 이렇게 만든 MLCC는 미국 등지로 대부분 수출했다. 이 덕에 삼성전기는 지난해 전년보다 10%가량 증가한 11조314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다. 올해 들어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공장의 연초 가동률은 비수기인 데도 90%를 넘었고, 업계에서는 곧 100%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기 주가는 20일 37만6500원에 장을 마감,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 효성중공업은 미국 유력 송전망 운영사와 765㎸(킬로볼트)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했다고 최근 밝혔다. 한국 기업이 수주한 전력기기 단일 계약으론 역대 최대 규모다. 이 회사는 글로벌 초고압 변압기 시장의 최강자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과 한국 창원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2028년부터 2031년까지 공급한다. 효성중공업은 “이번에 계약한 물량은 미국 중동부에 들어서는 데이터센터용 전력 인프라 시설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삼성전기, 작년 매출 11조원 사상 최대
인공지능(AI) 산업의 낙수효과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MLCC와 같은 전기·전자 부품, 전력기기 등 제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업계마다 주문이 몰려들어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실적 신기록 행진이 이어지면서 이들 업종이 생산·투자·고용의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 덕을 보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MLCC다. MLCC는 전자기기 회로에서 전기를 저장했다가 일정량을 안정적으로 내보내는 일종의 ‘댐’이다.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0.3㎜ 이하의 초소형 부품으로, 전자기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품이자 한 전자기기에 수백에서 수만 개가 들어가 ‘산업의 쌀’로도 불린다. 스마트폰에는 1000여 개, 전기차에는 1만 개, AI 서버에는 3만여 개가 필요하다. 특히 엔비디아의 블랙웰 등 최신 AI 서버는 한 대에만 기존의 10배인 30만여 개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밤낮으로 공장을 돌려도 공급이 달린다.

올해는 수요 증가에 가격 상승까지 이어져 성장세가 더욱 견고해질 것 같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MLCC 시장은 지난해 150억 달러에서 2030년 219억3000만 달러로 연평균 7.9% 성장할 전망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AI 적용 범위가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글라스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MLCC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특히 AI 서버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해 고온·고용량의 MLCC가 들어가는데, 고온·고용량 제품을 대량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기와 일본의 무라타제작소뿐이다.

이 두 기업이 시장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창민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기와 무라타제작소의 MLCC 공장 가동률이 비수기에도 90% 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MLCC 수급 불균형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 말했다. 삼성전기의 실적 성장세도 가팔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기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1조2854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인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의 인기도 ‘상한가’다. 전력기기는 효성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일렉트릭 등 국내 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아시아 태평양 등의 한국산 초고압 변압기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전력기기는 챗GPT가 등장한 2022년 이후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24억4000만 달러였던 수출액은 2022년 58억7000만 달러, 2023년 65억2000만 달러, 2024년 71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11월까지 71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덕에 국내 전력기기 ‘빅3’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은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3사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15조102억원, 영업이익은 2조1692억원에 달했다. 2024년 합산 매출 12조7691억원, 영업이익 1조4212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은 17.5%, 영업이익은 52% 증가했다.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AI 성장에 따른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났고, 동시에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송전과 배전에 필요한 전력기기 수요가 함께 증가한 영향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전력 수요가 2024년 4조970억㎾h(킬로와트시)에서 2025년 4조1860억㎾h, 올해 4조2840억㎾h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초고압 변압기는 수작업 공정 비중이 높고 숙련 인력 양성에 10년가량이 소요돼 단기간 증설이 어렵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업체를 배제하면서 한국산 전력기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전력기기 업체는 미국에서 ‘수퍼을(乙)’로 불린다. 실제, 전력기기 수요처인 미국의 전력·빅테크 기업은 지난해 변압기에 부과하기 시작한 관세(상호관세 15%+철강 파생상품관세 3~5%)를 고스란히 물면서까지 한국산 변압기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미국으로 수출된 초고압 변압기 가격은 t당 2만2269달러(약 3200만원)으로 전년보다 16.8% 상승했는데, 이는 미국이 지난해 8월부터 부과한 관세 영향이라는 게 진흥원의 설명이다.

전력기기 수출액, 챗GPT 등장 이후 매년 경신
전력기기 호황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전기산업진흥회가 이달 초 서울에서 연 ‘일렉스 코리아 2026’에는 일본 간사이전력, 중동 아랍 컨트랙터스 등 글로벌 주요 발주처가 찾아 국내 생산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일본은 전력망 현대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 중이고, 중동·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전력 수요가 2025년 3.3%, 2026년 3.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력기기 빅3도 3년 치 이상의 수주잔고를 확보했다. 지난해 말 기준 효성중공업은 11조9000억원, HD현대일렉트릭은 67억3100만 달러(약 9조8500억원), LS일렉트릭은 5조원 규모다. 이를 합산하면 3사의 수주잔고는 약 27조원에 이른다. 지금 계약해도 3년 뒤에나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AI 데이터센터, 전동화,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며 중장기 전력 수요 증가가 구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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