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밀린 한국영화…그래도 작품 좋다면 관객은 든다

서정민 2026. 2.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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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감독 변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89세에도 영화를 위해서라면 힘이 넘치는 ‘영화 청년’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다큐 감독으로 중앙SUNDAY를 만났다. 김정훈 기자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시네마 천국’을 꼽는다. 국내에선 1990년 개봉했는데, 36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의 작은 극장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영화를 사랑한 소년 토토의 우정,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OST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사기를 빠져나온 한 줄기 빛이 먼지 가득한 공기 사이를 뚫고 흰 스크린에 닿으면,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함께 울고 웃고 떠들며 ‘영화’라는 마법에 빠져든다. 중년 세대가 기억하는 ‘영화관’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김동호(89)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직접 연출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바로 이런, 우리시대 극장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다. 영원한 ‘영화 청년’ 김동호가 한국을 비롯해 일본·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오래된 영화관을 찾아가 그곳의 영화인들에게 ‘영화와 극장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영화와 극장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하고 답을 들어보는 게 주 내용이다.

다큐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스틸 컷. 화면 속 ‘광주극장’은 90년간 건재한 국내 최고령 극장이다. [사진 사나이픽처스]
이창동·박찬욱·봉준호 감독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다르덴 형제·뤽 베송·차이밍량 감독 등 거장감독들이 흔쾌히 그의 카메라 앞에 앉았다. 영화관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은 “내가 유일하게 잘 다녔던 학교”라 답했고, 박찬욱 감독은 “다른 은하계(세상)로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기차나 선박, 우주선”이라 답했다. 또 신영균·고은아·문희 등 영화계 원로 배우들과 전도연·이정재·하정우·황정민·문소리 등 중견 배우들도 그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배우 탕웨이는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삶을 즐기고 표현할 더 많은 방법이 생긴다” 답했고, 배우 고아성은 “이창동 감독님 말처럼,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 시작된다”고 답했다.

‘낙하산 인사’ 비난 피하려 열심히 영화 봐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몽글몽글한 감정에 젖는다.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피카디리·서울극장·대한극장 터를 보면서는 ‘추억 속 첫 영화관은 어디였지’ ‘누구와 같이 갔었지’ 기억을 더듬게 된다. 90년 역사를 가진 ‘광주극장’ 앞에서는 부디 100년이라는 숫자를 앞에 달기를 빌게 된다.

지난 19일 저녁 있었던 시사회 후 김 동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 다큐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요.
A : “3년 전 중앙일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동북부 후푸프 지역 인근에 1200년 전 이주한 고구려 후손들의 한국계 집단촌 ‘알 윤’ 마을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이야기를 다큐로 찍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캠코더를 사고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도 만났는데, 사실 이 이슈가 문화인류사적으로 너무 방대한 일이라 추진이 쉽지 않았어요. 마침 팬데믹이 끝나면서 관객이 확 줄어든 극장이 어려움을 겪는 걸 보고 그 고충을 카메라에 담아보자 했죠. 국내외 중견·신인 감독들에게 극장의 미래를 묻고, 어떡하면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영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Q : OTT 플랫폼에 밀리면서 한국영화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죠. 다큐 작업을 끝내고 감독님이 얻은 결론은 뭔가요.
A : “그래도 영화가 좋으면 극장에 관객은 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물론 영화제작 쪽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극장 쪽에서는 관객을 유치하기 위해 혁신적인 노력을 해야죠. 젊은 영화감독이 만든 파주의 한 영화관은 좌석이 불과 50석 미만이지만 거의 누워서 볼 수 있어 아주 편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영화관 자체도 관객을 끌 수 있는 새로운 노력들을 기울여야겠죠.”

Q : 영화관과 관련한 오랜 추억이 있다면.
A : “사실 어려서는 형편이 어려워 극장 갈 여유가 없었어요.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에도 바빠서 극장에 별로 못 갔고.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죠. 당시 정지영 감독 등 많은 영화인들이 낙하산 인사라며 저를 반대했어요. 영화계 사람들 정말 만만치 않구나,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진짜 영화인이 돼야겠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영화를 봤어요.”(웃음)
김 감독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공직 생활을 시작해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영화진흥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 국내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2010년까지 15년간 전 세계를 돌며 ‘문화 외교관’으로서 활약했다.

Q : 요즘 K컬처의 세계적 확산 뒤에는 오랜 시간 한 발자국씩 전진해온 K무비의 노력이 있었죠.
A : “저도 그 부분에 공감해요.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가자마자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를 시작으로 당시 비수교국인 러시아의 모스크바영화제까지 달려갔죠. 수교가 없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에도 가고, 헝가리·루마니아는 수교하자마자 바로 한국 영화 8편을 갖고 갔어요. 그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느라 정말 여러 나라를 다녔고, 그것이 지금 K컬처 확산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 임권택 감독과는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때부터 국제영화제에 늘 함께 다니셨다고요.
A : “그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강수연씨가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그걸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을 순회하기로 했는데, 그때 생각은 그곳 고려인들이 다 한국어를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자막 없이 그냥 갔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다 못하는 거예요. 난감했죠. 결국 모스크바영화제부터 동행했던 러시아어 통역사 중 고려인에게 ‘당신이 변사 역할을 좀 해달라’ 부탁했죠.(웃음)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꽤 어려운 영화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마이크를 잡고 대사들을 동시통역했어요. 내용이 얼마나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령껏 장면마다 딱딱 끊어서 대사를 치는 덕분에 그분과 내내 같이 다녔죠.”

Q : 강수연·안성기 배우와는 각별하셨죠.
A : “두 분이 부산국제영화제 1회 때 개막식 사회를 맡았었죠. 이후에도 개막식 또는 폐막식 사회, 심사위원을 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부산영화제를 찾았어요.”
2019년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김동호(가운데)와 안성기. [중앙포토]
김 감독의 국제영화계 네트워크는 마당발로 유명하다.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 “미스터 킴”을 부르며 달려오는 외국인들이 많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 감독은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 못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어느 해인가는 영화제 파티장에서 배우 정우성을 몰라보고 영어로 인사를 했던 일도 있다. 김 감독은 “그게 저의 최대 약점”이라며 “그 유명한 배우 정윤희씨 얼굴도 못 알아봤다”고 웃었다.

Q : 예전 방문했던 자택 3층 서재에는 온갖 책과 자료들로 빼곡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줄줄이 꽂힌 수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A : “오늘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적어두는 일기 수첩이에요. 그걸 1960년대부터 매년 모아왔으니 분량이 꽤 되죠.”

Q : 건강관리 비결은 뭔가요.
A : “2년 전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씩 테니스를 했어요. 55년쯤 했나. 그런데 무릎이 아파서 더는 안 되더라고요. 요즘은 아침마다 걷기운동을 하고 있어요.”
영화계 마당발…얼굴 잘 몰라보는 게 약점

Q : 두 달에 한 번 ‘동네 상영회’를 연다고요.
A : “팬데믹 이전인 2019년 6월부터 시작한 작은 모임이에요. 3층 서재에 전동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놀러 오셨다가 그걸 보고 ‘우리도 영화 좀 보자’ 하시길래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보기 시작했죠. 그때가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 해였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해라 한국어 영화 중 국제영화제(베를린영화제)에서 첫 수상한 영화 ‘마부’부터 상영했죠. 영상자료원에서 디지털로 복원한 ‘마부’를 함께 보고 제가 한국 영화 100년사를 간략하게 얘기했어요. 다음 달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보면서 김 감독의 아들 김동원 대표를 초대해 아버지와 영화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 대표가 ‘하녀’ 리메이크작을 만들었거든요. 전도연·윤여정 배우가 출연했죠. 팬데믹 때 중단했다가 2024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다시 모였고 이장호·배창호·이창동 감독 등이 와서 함께 영화를 보며 주민들과 다과를 나눴죠.”
다큐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에서 김 감독이 인터뷰한 인물은 100여 명이 넘는다. 그들이 답한 영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봉준호 감독은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영화적 긴장감과 풍성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며 “영화는 여전히 새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모험을 깊이 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적”이라고 답했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의 본질인 새로움과 익숙함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 미래는 밝다”고 답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두 명의 귀여운 초등생 극장 관람객들의 대답 “영화는…영화다” “영화관에 왜 오냐고요? 그냥 좋다”도 희망적이다. 영화 내내 질문자 역할을 했던 김 감독은 어떤 대답을 갖고 있을까.

“꿈의 공간이죠. 영화 자체가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영화관은 꿈을 키워주고 또 꿈속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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