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가 침실에서 간병인과…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을 묻다 [2026 베를린영화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6. 2. 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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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의 좌표를 가늠하는 2026년 베를린영화제 현지에서 ‘최고상’ 황금곰상을 놓고 겨루는 경쟁 부문(Competition) 소식을 전합니다. 22편의 후보작 가운데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작품들만 엄선해 전합니다. 수상 결과는 22일 새벽(한국시간 기준) 발표됩니다.
영화 ‘퀸 앳 씨’의 한 장면. 간병인인 마틴(왼쪽)과 치매 엄마 레슬리의 딸 아만다의 논쟁을 다룹니다. 마틴이 레슬리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아만다는 마틴을 성폭행으로 신고합니다.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
베를린영화제 현지에 문제작 한 편이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명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퀸 앳 씨’입니다. 이 영화는 현재 스크린데일리에서 2.9점(4점 만점)을 받으며 현재까지 공개된 작품 가운데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점수에 따른 관심보다도, 내용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한 장면으로 채워졌기에 베를린영화제에 참석 중인 매체 기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중입니다. 베를린영화제 현장에서 랜스 해머 감독의 ‘퀸 앳 씨(Queen at Sea)’를 살펴봤습니다.

‘퀸 앳 씨’는 꽤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이름은 아만다. 그녀는 치매에 걸린 모친 레슬리의 집을 방문했다가 2층 침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영화 ‘퀸 앳 씨’의 스크린데일리 평점은 2.9점으로 ‘로즈’(3.3점), ‘모스카스’(3.1점)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입니다. [스크린데일리 홈페이지]
마틴은 레슬리의 간병인이자 두 번째 남편입니다. 그러나 치매 엄마와의 결혼을 앞두고 딸 아만다는 “둘의 성관계는 동의할 수 없다”는 약속을 마틴으로 받은 뒤였습니다.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
침실 문을 열자 엄마는 나체 상태였고, 엄마와 함께 간병인 마틴이 성관계를 맺던 중이었습니다. 마틴은 놀란 눈을 뜨는 아만다를 보면서 “미안하다”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레슬리는 반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웅얼대고 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것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호했습니다. 아만다는 충격을 잠시 억누르고 엄마를 진정시킨 뒤 “성폭행 현행범”인 마틴을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그런데 마틴의 위치가 다소 애매합니다. 마틴은 치매 환자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레슬리의 간병인이면서, 동시에 레슬리의 ‘두 번째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란 점에서 이 사건을 본다면 부부 간의 성관계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둘의 결혼은 ‘조건부 결합’이었습니다.

아만다는 마틴에게 “엄마 레슬리는 치매로 인해 ‘동의’에 관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으므로 성관계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마틴 역시 이러한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성관계 현장이 목격되자 마틴은 “분명히 레슬리가 동의를 표현했다”며 섹스는 사랑의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아만다와 마틴의 논쟁이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룹니다. 마틴은 레슬리의 동의에 따른 사랑의 행위였다고 주장하고, 아만다는 명백한 성폭행이라고 반박합니다.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
그러나 아만다도 지지 않습니다. 아만다는 마틴에게 “어떤 방식으로 엄마가 동의를 표현했느냐. 엄마의 인지능력은 섹스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강하게 반박합니다. 경찰이 도착하고, 검시관은 이불과 옷가지를 수거합니다. 성범죄 검사를 진행하고 아만다와 레슬리가 돌아오자, 마틴은 “여긴 우리가 머무는 집”이라며 나갈 생각을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아만다 눈앞에 펼쳐졌던 지옥은 그녀의 오해였을까요. 여기까지가 영화 초반부 설정입니다.
‘퀸 앳 씨’에서 아만다 역을 맡은 프랑스 국민배우 줄리엣 비노쉬. [EPA·연합뉴스]
대사와 대사가 던지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영화 ‘퀸 앳 씨’는 둘 다 옳다고도 단정할 수 없고, 둘 다 틀렸다고도 확언할 수 없는 아만다와 마틴 두 인물,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레슬리의 표정을 다룹니다.

법과 약속은 이성에 기반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감정적인 행위이며,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욕망은 잔존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의 주체성을 질문하기도 합니다.

‘노년의 간병’이란 소재와 죽음과 사랑의 결정권이란 점에서 ‘퀸 앳 씨’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를 연상시킵니다. ‘아무르’에서 조르주는 사랑하던 아내 안느를 돌보던 끝에 그녀를 살해해 죽음에 이르게 하지요. 조르주와 안나에게 죽음은 사적인 선택(개인의 소멸)이었지만 이 죽음은 공적 영역의 질서(법과 규범)와 정면 충돌합니다. ‘퀸 앳 씨’도 사적인 선택(섹스)과 공적 영역의 질서(법과 약속)와 충돌합니다.

영화 ‘퀸 앳 씨’는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와 유사한 지점이 적지 않습니다. 사적인 선택이 공적인 영역에서 비판받는 지점을 다룬다는 점, 노년의 죽음과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감지됩니다. [티캐스트]
또 ‘집’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는 점, 세 명의 가족이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아무르’는 조르주와 안느의 선택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시선에 관객을 위치시킨다면, ‘퀸 앳 씨’는 아만다와 마틴의 논쟁 속에 관객을 배심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아만다도 마틴 가운데 누가 옳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답이 주어지진 않습니다.

‘아모르’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퀸 앳 씨’는 22일(한국시간) 발표되는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수상할 수 있을까요.

베를린영화제 주행사장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 걸린 심사위원들의 사진. 올해 제76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 배우 배두나도 참석했습니다. 각 사진 중앙에 심사위원들의 서명도 보입니다. [김유태 기자]
베를린영화제 주행사장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 걸린 심사위원들의 사진. 올해 제76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 배우 배두나도 참석했습니다. 각 사진 중앙에 심사위원들의 서명도 보입니다. [김유태 기자]
영화 ‘퀸 앳 씨’ 티켓.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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