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아의 책 사이, 삶 한 장] AI 시대, 왜 우리는 다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질문에 답하는 시대다. 검색은 몇 초면 끝나고, 요약은 버튼 하나로 완성된다. 정보는 넘쳐나고,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굳이 오래되고 두꺼운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더 비효율적인 선택은 아닐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고전을 읽어야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럴듯함'과 '깊이 있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매끄럽지만, 인간의 삶을 통과한 사유의 밀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고전은 오랜 시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유의 결정체다. 한 시대의 질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생각이다."
왜 고전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인간의 본질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랑과 질투, 권력과 정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수천 년 전의 철학자와 작가가 던진 질문이 지금 우리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이유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기록이기 때문에,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고전 읽기는 '느린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짧은 영상과 요약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다.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잊는다. 그러나 고전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은 길고, 사유는 깊으며, 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여러 번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고의 근육이 단련된다.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로 서게 된다.
AI는 답을 제시하지만, 고전은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왜 갈등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검색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삶 속에서 계속 사유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고전은 우리에게 생각의 시간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고전은 판단의 기준을 세워준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하는 힘이 필요하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가치와 사상의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사고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다. 뿌리가 깊을수록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고전 읽기는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글을 대신 써줄 수 있는 시대에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다. 고전은 사고의 깊이를 키우는 가장 강력한 훈련 도구다.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며 공감하고, 철학적 논증을 읽으며 논리적 사고를 익히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며 역사적 통찰을 기른다. 이는 단기간에 습득되는 기술이 아니라, 천천히 축적되는 사유의 힘이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도구다. 그러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방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준이 필요하다. 고전은 그 기준을 제공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물결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AI 시대에 고전을 읽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본질적인 준비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인간다움은 깊이 있는 사유에서 비롯된다.
속도에 밀려 생각이 얕아지지 않도록, 편리함에 익숙해져 질문을 멈추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고전을 펼쳐야 한다.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그 느린 시간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