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소수자’를 위한 법이다?
올해 1월 진보당 손솔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으며, 이어 2월엔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정부입법 형태로 처음 발의되었으나, 일부 종교계의 반발로 무산된 이후 여러 차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매번 자동 폐기되어 왔다.
차별금지법이 부재한 기간 동안 노키즈/노시니어존 논란, 이주민 배제, 혐중 정서, 여성혐오,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한 백래시, 성소수자 차별 등이 사회 곳곳에서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에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서 차별금지법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근거 없는 음해, 그리고 단순한 오해가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법 제정을 가로막는 커다란 방해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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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12일, 손솔 진보당 의원이 22대 국회에서의 첫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손솔 의원 페이스북) |
2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차별금지법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알아보자〉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진보당 손솔 국회의원과 진보당 여성엄마당,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 주최하고, ‘22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분야별 연속 토론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자리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 사회를 맡고, 책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손솔 의원,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반차별팀 여경 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약속
홍성수 교수는 먼저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저성장, 고령화 등 복합적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 후,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게 됐고, 이에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평소에 호감을 갖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되었다.”라고 분석했다.
더욱 문제는 “이것이 지난 10년간 해결되지 않았고, 제대로 대응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 침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지만, “차별 개념을 대략 7줄 정도로 적은 정도”에 불과하다. 홍 교수는 “차별이 어떻게 7줄의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겠는가?” 되물었다. 제대로 차별을 설명하고 이를 규정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수십 개의 조문으로 차별 개념을 구체화해야 시민들이 무엇이 차별인지 알고 예방할 수 있으며, 피해자도 구제받을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 차별금지법을 ‘소수자를 위한 법’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바로잡았다. 홍성수 교수는 “누구든 상황에 따라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수자 집단도 어떤 경우에는 다수자의 지위가 되기도 하고, 또 다수자 지위에 있는 집단도 어떤 맥락에 따라선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또 어제까지는 다수자의 지위였는데 내일부턴 소수자의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홍 교수는 “이 법은 결국 이 공동체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꼭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예기치 못한 차별로부터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약속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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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2월 12일 저녁,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차별금지법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알아보자: 22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분야별 연속 토론회〉가 열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현행법은 ‘복합 차별’ 겪는 사각지대 해소 못해…
차별금지법이 여성 노동자에게 보호막 될 것
여경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반차별팀 팀장은 “한 사람은 성별이라는 정체성 하나로만 규정되지 않는다”라며, “개인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지역, 나이, 학력, 고용 형태 등 여러 정체성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과 같은 기존의 개별적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채용 과정에서의 외모 차별 혹은 사상검증 등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불이익을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사유를 포괄하여 규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경 팀장은 최근 몇 년 간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민우회 같은 여성단체를 SNS에서 팔로우하고 있어서’, ‘짧은 머리라서, 페미로 보이니까’ 등의 이유로 여성들이 폭력과 배제를 당한 일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런 사상검증을 ‘고용주가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차별이다’라고 차별금지법에 근거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건,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막을 하나 더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
법을 발의한 손솔 의원 또한 고용형태의 변화와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노동 영역에서의 차별금지 방안을 고민하며 법안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노동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 다양한 형태의 ‘노무 제공자’를 포괄하여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차별 유형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손솔 의원은 최근 배달노동을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을 배정하는 AI가 여성과 고령자에게 일을 덜 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그와 관련된 알고리즘이 공개되어야 하고, 정말 차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빨갱이’, ‘페미’ 등 직장에서 사상검증을 하거나 괴롭히는 행위도 차별의 범주에 넣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우려와 달리, 형사처벌 남발되지 않을 것
차별금지법의 효과는 처벌이라기보다 ‘피해 구제’와 ‘예방’
차별금지법에 대한 큰 오해 중 하나는, 이 법이 제정되면 형벌이 남발하고 표현의 자유가 사라져 아무 말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을 했다는 것만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건 사실상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차별로 형사 고소가 되면 “사법부는 보수적으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무죄 판결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차별시정 기구를 두고, 거기서 권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걸 일차적인 해결 방법으로 두고 있다.” 홍 교수는 “권고 자체는 법적 강제성이 없지만,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차별 인정은 해당 기업이나 기관에 큰 압박으로 작용하며, 현재도 사기업을 포함해 약 70~90%의 높은 권고 수용률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권고를 무시하는 경우,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그 때도 차별금지법이 활용될 수 있다. “인권위가 조사하여 마련한 설득력 있는 논거와 증거들이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매우 유리한 증거로 쓰이게 되어 승소 확률을 크게 높인다. 또한 차별금지법안엔 소송 지원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차별금지법은 일반적인 차별 행위 자체를 당장 형사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해고, 강제 전보, 승진 누락 등 ‘보복성 불이익 조치’를 가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하며, 형사 처벌도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내부 고발자와 피해자가 추후에 보복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내어 신고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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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2대 국회 2번째 차별금지법안(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대표발의)에 대한 입법예고가 시작되자, 시민들에게 찬성 의견을 남겨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입법예고 기간은 2월 24일까지다. https://bit.ly/3OehBpK |
차별금지법의 역할과 효과는 처벌이라기보다 ‘사전 예방’에 더 방점을 맞추고 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 시정 기구를 두고, 그곳이 제대로 활동을 함으로써 변화가 생기면, 기업이나 대학 등에서도 인권센터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차별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라고 짚었다. 이러한 기구들은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에도 힘쓰게 된다. “이런 선순환이 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게 차별금지법의 기본”이라고, 홍 교수는 강조했다.
‘국가’가 차별을 시정하고 예방하는 계획 세워야
차별금지법 제정의 효과는 여러 방면에서 드러날 수 있다고, 패널들은 입을 모았다. 여경 팀장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미디어 안에서 보여지는 차별 표현 및 메시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방송통신 심의기준이 있긴 하지만, 심의위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심의 안건이 올라오더라도 안건 상정을 하지 않거나, 해석을 이상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기본법’이 생긴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
더불어 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인신공격이나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 차이와 차별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 안에 성평등 교육이나 차별과 관련된 인권감수성 교육이 포함되면 다양성과 포용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손솔 의원은 국가 차원의 차별예방 계획이 수립된다는 점 또한 주요한 효과로 꼽았다. 법안엔 “국가에 차별 시정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고, 국무총리실 등 국가기관이 5년마다 차별 시정 및 예방을 위한 종합 계획을 의무적으로 세우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손솔 의원은 계획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계획에 맞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이 타당하며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 등의 논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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