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성역’ 아닌 탐구·논쟁의 인간 활동 [북스&]

최수문 선임기자 2026. 2. 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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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에 관한 궁극적 진리를 밝혀낸다는 '과학적 실재론'은 우리 시대가 유지하는 견고한 믿음이다.

과학은 비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성역'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논쟁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인간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오늘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역설적으로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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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장하석 지음, 김영사 펴냄)


과학은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에 관한 궁극적 진리를 밝혀낸다는 ‘과학적 실재론’은 우리 시대가 유지하는 견고한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부류를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며 진화론에 대한 반대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로 알려진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신간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에서 이러한 통념이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 과학의 진보에 해를 끼치는 반(反)과학적 이상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은 비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성역’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논쟁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인간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보다 현실적인 실재론으로 ‘행동하는 실재주의(Activist Realism)’를 주창한다.

저자는 오늘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역설적으로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실재론은 과학 이론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믿는 태도를 뜻한다. 때로는 유전자나 블랙홀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도 계산을 위한 수학적 모델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 지식을 의문의 여지가 없는 신성한 진리로 포장할수록, 실제 과학이 과장된 이미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과학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였던 대중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다고 경고한다. “종교적 근본주의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종교적 근본주의를 이기는 길이 아니다. 가장 성숙한 사회들이 정치에서 반대파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학에서 그런 충동을 극복해야 한다. 억압을 정당화하는 권위를 과학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존 실용주의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지식’을 참인 명제나 이론적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한 목표를 위해 수행하는 활동이자 무언가를 할 줄 아는 능력인 ‘능동적 앎’으로 다시 정의한다. 또 ‘실재’도 우리의 정합적인 활동 속에서 성공적으로 채용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책은 과학사와 철학적 통찰을 넘나들며 저자 특유의 친절한 해설과 치밀한 분석, 그리고 과감한 통찰을 입체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앎은 견고한 암반 위가 아니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늪지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저자의 인식도 흥미롭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과학철학 석좌교수다.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차남이며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의 동생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닌 후 미국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 스쿨로 유학했고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스탠퍼드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 연구에서 공로로 미국 물리학회와 물리연구소가 수여하는 에이브러햄 페이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만 9000원.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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