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급성장 이끈 ‘스케일링 법칙’ 임계점 왔다[북스&]
연산 자원 늘릴수록 성능 개선
오픈AI 접근법, 교리처럼 적용
필요 자원 급증에 지속 불가능
자원 강탈·노동 착취 부작용도
빅테크에 뺏긴 AI 통제권 회복
연구 다양성 촉진…대안 찾아야

2022년 11월 세상에 나온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는 전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를 탐색하거나 문서를 작성하고 사업 계획을 짤 때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일은 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AI는 의료·교육·금융·법률·언론·문화 등 사회의 핵심적 기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의 선봉에 선 오픈AI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오픈AI는 원래 비영리 단체로 출발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강력한 AI를 경제적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졌다. 하지만 현재 오픈AI는 이익을 좇는 상업화의 길로 돌아섰다.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 무단 사용과 노동 착취, 환경 오염 등 생성형 AI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부작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유력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인 저자는 오픈AI와 챗GPT의 성공 신화 뒤에 감춰진 이면을 파헤친다. 오픈AI 전·현직 직원 90여 명을 비롯한 업계 관계자 260명과의 인터뷰와 내부 문건, 서신 등을 토대로 AI 산업의 민낯을 생생하게 들춘다.
저자는 오픈AI가 가져온 여러 폐해 중에서도 AI 연구의 다양성을 사라지게 한 점에 주목한다.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일리야 수츠케버는 AI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투입되는 연산 자원을 대규모로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산 자원의 규모는 AI 반도체의 처리 능력과 칩의 개수로 결정된다. 오픈AI는 지난 6년 동안 연산 자원의 양이 서너 달마다 두 배씩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도체의 처리 능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오픈AI는 이를 ‘스케일링의 법칙’이라 불렀다.
하지만 저자는 ‘스케일링의 법칙’이 ‘무어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물리 법칙이 아닌 경험칙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 설립자 고든 무어가 1965년 미국 잡지 ‘일렉트로닉스’에 쓴 기고문에 담았던 가설이다. 경영자로서 무어의 관점에서 회사가 달성할 수 있는 발전 속도였고 그 속도에 맞추기로 한 무어의 선택이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반도체 업계가 무어의 선택을 따라가면서 무어의 법칙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고 스케일링의 법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케일링에 대한 그들(오픈AI)의 신념은 이제 기술 산업 전반에서 교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AI 개발에 필요한 자원과 데이터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스케일링의 법칙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저자는 오픈AI를 ‘제국’에 비유한다. 자신들의 비전에 맞는 AI를 개발하기 위해 예술가와 작가들의 작품,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관찰한 것을 기록한 데이터,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땅과 전력·수자원 등 자원을 강탈하고 있으며 이는 AI 권력자들의 본질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질 낮은 데이터 사용을 늘리면서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시간당 평균 2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고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에 종사하는 현실도 짚는다.
저자의 결론은 AI가 꼭 지금의 모습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챗GPT와 대규모언어모델(LLM), 생성형 AI 애플리케이션이 각광받고 있지만 이는 AI가 발현되는 여러 모습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진단도 눈길을 끈다. 특히 오픈AI 등 소수의 빅테크가 AI의 미래를 결정하게 놔두지 말고 우리가 AI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AI 기업이 사람들의 데이터와 작업물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규를 강화하고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들은 AI 연구의 다양성을 촉진시켜 현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AI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며 오픈AI의 전략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앞으로 나올 AI 기술은 미리 결정돼 있는 게 아니다.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만들어낸 허상을 걷어내며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672쪽, 2만 8800원.
이재용 선임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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