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 이전 16개월, 수익률 따라 은행에서 증권으로
은행 적립금 15% 늘 때 증권사 27% ↑
절세되는 ISA 중에도 '중개형' 선택 늘어

저금리 시대 예·적금 탈출이라는 1차 머니무브가 마무리되면서 자산관리 시장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퇴직연금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축으로 은행에서 증권으로 자금이 옮겨가는 2차 이동이 본격화되는 국면이다. 예금 중심의 전통적 은행 채널을 벗어나 주식·상장지수펀드(ETF)·펀드 등 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적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496조817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431조7000억원 대비 65조1175억원 증가한 규모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260조5580억원(52.45%)으로 가장 많았고 증권 131조5026억원(26.47%) 보험 104조7569억원(21.09%) 순이었다.
외형에서는 여전히 은행이 과반을 차지하지만 증가 속도는 다르다. 2025년 한 해 동안 증권업권 적립금은 26.54% 증가해 은행 15.41% 보험 7.43%를 크게 웃돌았다. 점유율도 증권이 2%포인트 이상 확대된 반면 은행과 보험은 소폭 하락했다.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와 금융당국은 2024년 10월 31일 기존 운용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사업자를 변경할 수 있는 '실물이전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시행 이후 3개월간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한 자금은 6491억원으로 업권 간 이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5대 은행 기준으로는 제도 도입 이후 1조5000억원 이상이 증권·보험사로 옮겨간 것으로 집계됐다.
DC·IRP 비중 절반 돌파···적극 운용 구조 확산
자금 이동의 중심에는 DC형(확정기여형)과 IRP(개인형퇴직연금)가 있다.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 475조원 가운데 DC형 116조원 IRP 99조원 비중은 50.3%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2년 42.5%였던 DC·IRP 비중은 2025년 9월 53.9%까지 상승했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형(확정급여형)에서 근로자가 직접 ETF·펀드 등을 선택하는 구조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1년 2025년 4분기 누적 기준 수익률도 이를 뒷받침한다. IRP 평균 수익률은 5.86% DC는 5.18%로 DB형 4.04%를 웃돌았다. 특히 개인IRP 원리금 비보장형 1년 수익률은 주요 증권사에서 20% 안팎에 형성됐다. 하나증권 21.01%, 신한투자증권 20.98%, KB증권 20.81% 등 상위권 간 격차는 0.2%포인트 이내였다. 보험사와 은행에서도 20%대 성과가 나타났지만 ETF 비중이 높은 계좌에서 상승분이 빠르게 반영된 영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증권사별로는 미래에셋증권의 독주가 눈에 띈다. 2025년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38조985억원으로 전년 대비 30.50% 증가했다. DC형 적립금은 11조8745억원에서 16조9203억원으로 IRP는 11조142억원에서 15조8611억원으로 확대됐다. 2025년 한 해 동안 전체 DC 시장 유입액 중 19.12%에 해당하는 4조4159억원이 미래에셋증권으로 유입됐다.
삼성증권은 적립금 21조573억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DC형 적립금은 4조9545억원에서 7조7197억원으로 IRP는 6조3023억원에서 9조1297억원으로 늘었다. DC 원리금비보장형 3년 수익률은 13.77%로 DC 적립금 1조원 이상 증권사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ETF 잔고 역시 2025년 말 기준 7조3000억원으로 1년 새 118% 증가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5년 말 기준 연금 자산 30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 자산은 22조340억원 개인연금은 8조773억원이었다. IRP 가입자는 47만명으로 집계됐다. 디폴트옵션 '고위험 BF1'의 1년 수익률은 26.62%로 나타났다. 다만 대형사일수록 자산을 분산 운용하며 변동성 관리에 무게를 두는 전략을 취하면서 일부 계좌의 1년 수익률은 16~17%대에 머물렀다.
ISA도 중개형 중심 재편···증권 채널 쏠림
ISA 역시 증권 채널 쏠림이 뚜렷하다. 2025년 9월 기준 ISA 총 투자금 43조5094억원 가운데 중개형 ISA 잔고는 26조8076억원으로 61.6%를 차지했다. 2022년 34.9%였던 중개형 비중은 2025년 11월 64.3%까지 상승했다. 삼성증권 중개형 ISA 잔고는 8조원을 돌파했고 고객 수는 144만명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구조적 변화로 해석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예금 중심 자산관리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퇴직연금과 ISA를 통해 자본시장 상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며 "실물이전 제도 이후 수익률 비교가 쉬워지면서 증권 중심 자금 유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단기 성과가 구조적 경쟁력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최근 1년 수익률은 증시 반등과 ETF 비중 확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라며 "연금 자산은 장기 운용이 전제인 만큼 단기 성과보다는 변동성 관리와 장기 수익률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물 이전 제도=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운용사나 금융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갈아타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백과 비용을 줄여 경쟁을 촉진하는 취지로 도입됐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