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나만의 창의력 덕질·딴짓에서 나와요"
누구나 70점 낼수 있는 시대
당장 성과 못내도 딴짓 해봐야
AI엔 없는 '의외의 한 끗' 발견
30년간 광고·영화·글 감상평
파일로 모아둬 '감각'을 저장
언제든 꺼내 보며 발상 환기
자료 속 헤매며 얻는 영감 커
창작자라면 '과정'에 집착해야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20여 년간 '한 줄'을 고민해온 광고 디렉터 정규영 씨세븐플래닝즈 대표는 인공지능(AI) 시대 나만의 '한 끗'을 만드는 법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어떤 분야든지 AI만 있으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70점 이상의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나만의 창의성을 발견하기 위해선 굳이 안 해도 관계없는 '덕질'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현대증권, 한독약품 등 굵직한 광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정 대표는 대한민국광고대상, 한국광고학회 선정 '올해의 광고상' 등을 수상한 광고 전문가다. 정 대표 역시 본업과는 차별화된 덕질을 통해 성공적으로 '부캐'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국, 일본, 미국 등의 전설적인 광고 카피를 주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고 '하루 카피 공부' 등 광고 책을 잇달아 출간하며 강단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정 대표가 말하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란 당장의 성과로 이어지진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요령으로 그는 '반복'과 '한눈팔기'를 제시한다.
먼저 그가 강조한 반복의 효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좋은 콘텐츠는 일정한 구조가 있다"며 "반복해서 보다 보면 그 구조가 보이고, 그걸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몸으로 익히게 된다"고 했다. 정 대표가 필사를 가장 좋은 훈련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는 글감, 즉 감각의 저장소를 확보할 수 있다. 정 대표는 책을 쓰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습관으로 '아카이빙'을 들었다. 인상 깊었던 카피와 단상은 엑셀 파일에 모아두고,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 마음에 남는 구절은 별도의 워드 파일에 따로 저장한다. 그는 이런 기록을 3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금씩 쌓아왔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매일 쌓아둔 자료가 있어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 그 아카이브를 아무 데나 펼쳐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그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다작(多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다음 단계는 한눈팔기다. 정 대표는 이를 "쉽게 정체되기 쉬운 감각을 다른 장르·매체로 넘나들며 환기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세상과 끊임없이 공명하는 과정에서 사람만의 감각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영감이 싹튼다는 뜻이다. 굳이 시간을 내 공연을 보고, 여행을 떠나고, 밤새 책을 읽는 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인간과 로봇을 외형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를 그린 일본의 명작 만화 '플루토'에서 로봇 형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아서 구분하기 쉽다고요. 결국 쓸데없는 짓이 가장 인간다운 행동인 거죠."
정 대표는 AI 시대일수록 창작자들이 한눈팔기의 축소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질문 한 줄이면 몇 초 만에 수십 가지 시안이 쏟아지는 시대가 되면서 책을 뒤지고 검색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나만의 영감을 발견하던 과정이 점점 압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유독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나만의 한 끗이 나온다"며 "AI가 대신할 수 없는 건 이리저리 튀는 과정에서 얻는 인간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조언했다.
그가 꼽은 인생 명카피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인생의 등장인물이 달라진다". 정 대표 또한 부캐를 만들면서 출판사, 일본인 팬들, 인스타그램 팔로어, 기자, 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연령대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됐다. "일본인 독자들이 독서 인증샷을 보내주기도 해요. 이제 광고업보다 부캐에 쏟는 시간이 많아졌을 정도입니다."
AI가 창의적인 직업부터 흔들어놓고 있는 지금, 정 대표의 부캐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인생 2막의 신호일까. 이 질문에 그는 "미래는 모르겠지만 광고든 뭐든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을 것 같다"며 "다만 기존 광고 대행업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업계에도 AI발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지만 한 끗을 찾는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과정의 즐거움만 빼앗기지 않는다면 AI는 우리 삶에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까지 마음껏 판을 벌일 수 있는 지금, 당장 나만의 덕질을 시작해보세요."
[박태일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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