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류승완 감독 "명대사도 '휴민트' 가동해 얻죠"
류승완·지승호 지음
은행나무 / 314쪽│2만1000원
영화감독 데뷔 30주년 맞아
책과 영화 동시에 선보여
"영화는 사람 마음 훔치는 일
영화인, 극장 올 이유 증명해야"

“제가요? 진짜요?” 이런 반응은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한국 영화사의 명장면을 만들어온 영화감독 류승완에게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모르고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저 계속 영화를 만들고, 할 수 있는 걸 해왔다고.
류승완(53) 감독은 지난달 11일 영화 ‘휴민트’ 개봉과 같은 날 지승호 작가와 함께 쓴 인터뷰집 <재미의 조건>을 출간했다. 영화와 책을 ‘동시 개봉’한 류 감독을 서울 암사동, 그와 배우자 강혜정 대표가 함께 이끌고 있는 영화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났다. 영화가 개봉한 다음 날이었다.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류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저는 숫자에 약해요. 기념일도 못 챙겨서 맨날 강 대표한테 혼나는데요.”
◇30년 영화인의 태도

영화를 만들며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하던 그가 ‘태도’라는 단어를 꺼냈다. “외유내강에서 ‘상업영화’란 단어는 금기어예요. 그 말을 쓰면 모든 목적 자체가 박스 오피스의 숫자가 돼버려요. 영화를 만드는 우리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게 제 태도예요.”
‘휴민트’를 둘러싸고 극장가의 기대와 불안이 유난히 경합하는 건 한국 영화계가 위기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극장에 발길이 끊기자 OTT 개봉을 택하는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류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3년이 인류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극장 경험이 공백으로 남은 세대가 등장했다”고 했다.
류 감독은 결국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돌파구라고 말했다. “극장에서 흥분되던 경험이 없는 세대에게 극장은 그저 불편한 공간일 수 있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왜 특별한지를 증명하는 게 바로 이 시대 영화인의 숙제인 거죠.”
◇명대사의 조건
류 감독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어이가 없네?” 등 공감대를 장악한 명대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좋은 영화’의 조건으로 “관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주는 영화, 질문을 던지는 영화, 그리고 진짜가 느껴지는 영화”를 꼽았다. 재미, 철학, 몰입 세 요소를 함축하는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명대사’다.
그가 들려준 명대사의 비결은 요약하자면 취재, 채집, 조립이다. 류 감독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만들 때는 장풍협회까지 찾아갈 정도로 취재에 공을 들인다”며 “이번 영화에서 조 과장(조인성)이 헌법을 인용하는 대사는 실제 탈북자가 국정원 블랙 요원에게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는 일화를 듣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각본에 넣은 것”이라고 했다.
책 역시 훌륭한 자극제다. 사무실 곳곳에는 무협 소설부터 만화책 ‘아기공룡’ 시리즈까지 수백 권의 책이 놓여 있었고, 류 감독의 방은 벽을 책장으로 둘렀다. 물론 가운데에는 이소룡이 수련하던 것과 같은 영춘권 목인장이 자리했지만. 류 감독은 ‘인생 책’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고전 복수극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꼽았다. 이야기의 근원과 같은 소설이라고.
◇“영화는 관계의 예술”
<재미의 조건>은 용감한 책이다. 형식부터 그렇다. 지 작가가 류 감독을 3년간 수차례 인터뷰한 뒤 류 감독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내용도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과 그로 인한 좌절, 패키지 계약 관행에 대한 비판 등을 진솔하게 담았다.
그에게 영화는 ‘관계의 예술’이다. 외유내강이 신인 감독의 영화를 발굴하고, 서울독립영화제를 후원하는 것도 영화계를 위해 시간과 사람을 붙들려는 노력이다. “21세기 관객은 시청각 정보의 경험치가 워낙 높잖아요. 영화계 진입 장벽이 높은 와중에 후배들을 품어줄 둥지가 무너지고 있으니까…. 저는 영화판에서 잘 놀았으니 후배들이 더 잘 뛰어놀 수 있는 터를 닦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류 감독은 인터뷰 뒤에는 ‘베테랑 3’ 각본을 고치러 간다고 했다. 방금 전까지 이번 영화 촬영 중에 담낭 결석의 고통을 참느라 숙소에서 물구나무서기까지 한 얘기를 했는데.
영화감독 17인이 각자의 데뷔 과정을 들려준 책 <데뷔의 순간>에서 과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 설령 안전한 것만 골라 시도하더라도 그냥 혼자 방구석에 앉아 고민만 하는 것보다 몇백 배 더 낫다. (…) 챔피언은 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구은서/유승목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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