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미술래잡기] 피지컬AI 시대의 인간다움

2026. 2. 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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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필립 K 딕의 SF소설
핵전쟁 후 황폐한 지구 그려
진짜 동물이 희귀해지면서
복제된 양 기르는 주인공
진짜 갖지 못한 열등감 빠져
그를 위로하는 아내의 사랑
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가치
카라바조의 작품 '나르키소스'.

설 연휴 미뤄둔 독서 리스트 중에서 필립 K 딕의 1968년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었다. 서양에서 잠이 안 올 때 양을 세듯, 안드로이드도 꿈속에서 양을 셀까. 그렇다면 그 꿈에는 전기양이 나올까. 60년 전의 이 기묘한 질문이 요즘의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 진짜 동물은 너무나 희귀해져 천정부지로 값이 올랐다. 주인공 릭 데커드는 자신이 옥상에서 키우는 전기양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가난해서 진짜 동물은 입양할 수 없고, 파상풍으로 죽은 원래 양의 복제품을 돌본다는 것을 이웃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은, 진짜를 갖지 못한 자의 열등감과 가짜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어쩌면 곧 우리가 마주할 풍경일지 모른다. 올 초 CES를 강타한 피지컬 AI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심지어 주인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애완 로봇까지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배설물을 치울 필요도, 늙고 병들 걱정도 없는 완벽한 반려동물의 등장. 우리는 이제 무거운 책임감과 힘들고 귀찮은 갖은 노동에서 해방될 예정이다.

그러나 몸이 편해지고 사람을 대신할 기술이 등장할수록 불안한 것은 나뿐일까. 작금의 상황에서 희한하게도 카라바조의 1599년 작품인 '나르키소스'가 떠올렸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타인(그 이름은 '에코')과의 교감을 거부한 대가로 지독한 자기애에 빠지는 형벌을 받는다. 바로크 미술의 대가 카라바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 같은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사용해 더욱 극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나르키소스는 자기 이미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자신이 선 곳이 물인지 땅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그의 무릎과 팔, 물에 비친 반영으로 화면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원의 구조로, 다른 곳에는 관심 없이 자기만 파고드는 이의 폐쇄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기술이 너무나 안락해서 복잡한 현실감각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이 폐쇄 회로 속에 고립돼 버릴지도 모른다.

필립 K 딕 소설의 결말이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을 길을 제시해준 것 같다. 감정이입과 공감능력을 시험하는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탈주한 안드로이드와 치열한 혈투를 벌이며 유난히 고된 하루를 보낸 후, 데커드는 황무지에서 우연히 귀하디귀한 두꺼비를 발견하고 상자에 고이 담아와 아내에게 자랑을 하지만, 곧 그것이 인조 두꺼비임을 깨닫는다. 오전만 해도 그는 절망했겠지만, 곧 주인공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말 긴 하루였어"라며 잠자리에 든다. 그의 침묵과 수면은 패배도 허무주의도 아니었다. 기계와 생명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헷갈리는 혼돈 속에서, 스스로를 자문하는 존재이자 유한한 인간으로서 겪어내야 했던 치열한 정신적 피로의 방증이었다.

그때 피곤에 쓰러진 남편 몰래 아내는 조용히 전기 두꺼비용 '인조 파리'를 전화로 주문한다. 소중하게 두꺼비를 데리고 온 남편의 정성을 지켜주고 싶은 작은 배려, 인간이 기계와 구별되는 결정적 순간은 바로 여기다. 안드로이드는 효율적으로 움직일 뿐이지만, 오직 인간만이 가짜 앞에서도 소중한 의미를 찾아내고, 잠든 상대를 위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한다.

AI 세상에서 힘든 일은 로봇이 다 해줄 것이고, 우리 신체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남아도는 힘을 어디에 쓰는 것이 좋을까. 카라바조가 그렸던 저 완벽한 환영을 깨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데 쓰는 것은 어떨까. 육체의 땀방울이 사라진 자리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끙끙 앓는 정신의 식은땀을 흘려보면 어떨까.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데커드의 아내가 전기 파리를 주문하며 느낀 애잔함, 그것이 우리를 인간이게 만든다.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 그 고단하고 아름다운 특권만큼은, 결코 기계에 양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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