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도끼에서 푸근한 동그라미로 … 얼굴에 시대를 새겼다
70년 작품 인생 한자리에
군정권 시절 ㄱ자 얼굴로
도끼작가 별칭 얻기도
"가슴속 맺힌 응어리 분출"
"모든 작품이 내 가족이지만
가장 좋은 얼굴 아직 못찾아
반가사유상처럼 마음속에"

"좋은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93세인 조각 거장 최종태 선생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을 건넸다.
"몰라요. 아직 못 만들었어요."
70년 화업, 그중 대부분을 오직 '얼굴'만 조각해온 작가의 고백이다. 그의 작품은 1970~1980년대 날카로운 '도끼형'에서 최근 푸근하고 동그란 얼굴로 변모했지만, 정작 작가는 "얼굴 골조는 그대로"라며 "내 보기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일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얼굴'은 그가 조각한 얼굴 형태의 변천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상은 물론, 한 조각가가 자유를 찾아가는 대여정을 보여준다. 조각 51점, 회화 19점, 총 70점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난 작가는 1958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공주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했다. 교장실에 그가 빚은 석고 얼굴 조각이 놓였는데, 누군가가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라는데 어째 이 모양이냐"고 타박했다고 한다. 체면이 깎인 그는 대전에서 나무 한 토막을 사 깎기 시작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해 입선했다. 이후 국전에서 특선을 거듭했고 추천작가, 초대작가가 됐다. 졸업 후 10년 만에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부임했고, 1970년엔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 무렵 학생들은 매일같이 군사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계엄령이 내려졌다. 그때 그가 빚은 얼굴은 도끼처럼 서늘했다. 코가 베일 듯 날카로운 선, 얇은 목, 'ㄷ' 자형 얼굴. 이목구비는 가까이에서 봐야 보일듯 희미하게 작았다.

1985년 파리 아트페어 피악(FIAC)에 작품을 갖고 갔을 때 '도끼 작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무렵의 작업 방식은 거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발상이었어요. 그것이 도끼 얼굴 시대를 살아온 나의 작품 방식이었습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최소한의 형식을 빌려서 분출한 거죠."
시대에 대한 은밀한 저항이었다. 얼굴을 납작하게 짓누르는 것은 권위적 시대만이 아니었다. 스승인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그리고 세계 미술사의 거장들도 하나같이 그를 옥죄었다.
"세계 미술사에 좋은 게 좀 많아야지요. 평생 내 손에, 머리에, 가슴에 따라다녔어요.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동시대를 살았던 스승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어요."
서른일곱이었던 1968년, 그는 스승으로부터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추상 조각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 조각을 빚어냈다. 화살촉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삼각형과 도끼 얼굴이 연이어 탄생했다.
억압적인 시대가 지나고 주변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일까. 날카롭고 모난 얼굴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부드럽고 동그란 형태로 변했다.
2005년 이후부터는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무에 염색약을 바르고, 붓으로 눈과 입을 그렸다.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는 반가사유상을 평생의 롤모델로 삼을 만큼 조형적 화려함보다는 깊은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더없이 종교적이고 근원적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1970년대부터 순수하고 맑은 성모상을 빚으며 한국 종교미술 토착화를 일구어왔다. 2년 전엔 종교색이 짙은 작품 157점을 엄선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 세워진 관음상 역시 그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동갑내기였던 법정 스님과의 인연으로 빚어진 이 관음상은 성모를 닮은 자비로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종교 간 벽을 허문 상징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는 성모상과 소녀상을 비롯해 주로 여인의 얼굴을 조각해왔다. "처음부터 남자를 만들지 않았어요. 반가사유상처럼 맑고 깨끗한 것을 추구하다 보니 여성이 더 적합했나 봐요."
고향인 대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최종태 미술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한평생 '얼굴'을 빚어온 그는 "작품 중 하나도 귀엽지 않은 게 없다"며 "모든 작품은 내 식구이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했다. 삶 전체를 투자했기 때문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작가는 순수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 그에게 죽음, 아름다움, 진리를 묻자 작가는 "크고 중요한 질문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 좋은 얼굴의 정의를 물었다. 그는 "더 해야 한다"며 잠시 말문을 닫았다.
"좋은 얼굴? 이 또한 말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속에 있는 거니까. 꺼내기 전에는 말이 안 돼요. 반가사유상처럼 마음 안에 있는 거지요."
전시는 오는 3월 29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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