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정치 논리에 좌초한 포항 롯데마트와 공룡이 된 쿠팡

2015년 7월 16일 우원식 당시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포항시 두호동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현장을 찾아 다양한 이야기를 청취했다. 우 위원장은 “롯데마트의 포항 입점은 비단 관련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경제와 관련되는 문제이며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대형마트는 이윤과 수수료 등 매출 대비 30% 이상이 수도권 본사로 흘러가는 구조라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이 가져가야 할 몫을 대형마트가 가져가면 지역경제가 무너진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방향성이 뚜렷하고 군더더기 없는 발언은 너무 쉽게 선을 그어버린다. 대기업과 소상공인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공생하는 소상공인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이렇게 대형마트의 입점 허가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이 한두 마디 말을 보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포항시가 재벌기업에 특혜를 줄 것이냐, 아니면 포항 시민의 삶을 대변해서 지역경제를 지킬 것이냐, 이분법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포항시는 결국 롯데마트 건물에 대한 점포 개설 등록을 반려했다.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은 무려 7년간 빈 건물로 방치됐다. 2022년에 이르러서야 이 부지를 49층 주상복합 시설로 개발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포항 전통시장 소상공인의 생존권은 보호됐을까. 한때 동해안 최대 전통시장이었던 죽도시장은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다. 포항 도심대로 곳곳엔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을 함께 엮어보면 논의가 흘러가는 과정은 더 흥미롭다. 2015년 롯데쇼핑은 건물을 다 짓고도 마트 입점에 실패했는데, 불과 5년 후 포항에선 쿠팡의 물류센터를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기 시작했다. 김천에 축구장 12개 넓이 규모의 첨단 물류센터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나온 얘기다. 쿠팡의 물류센터는 과연 대형마트와 다를까. 이름만 다른 것은 아닐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2025년 기준 포항을 포함한 경북 지역 내 쿠팡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쿠팡은 지난해 6월부터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로켓프레시 서비스도 개시했다. 마트가 발을 못 붙이고 시장이 텅텅 빈 자리를 쿠팡이 메운 셈이다.
지난 10년간 포항에서 벌어진 롯데마트의 입점 불발과 죽도시장의 쇠퇴, 쿠팡의 어부지리 성장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로 산업정책이 만들어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대형마트의 쇠퇴가 시장·골목상권의 번영과 관계가 없었는데도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 새벽배송의 길을 터주자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려는 논의가 진행되자마자, 논의는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여전히 예전 사고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이 목소리를 무시 못 하는 쪽이 있는 탓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수 없다. 쿠팡 잡다가 골목상권을 다 망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유통산업발전법을 만드는 데 기여한 당시 을지로위원장도 다시 찾았다. 현재의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 회장단은 우 의장과 함께한 1월 16일 간담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탈로부터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라고 말하면서 대형 식자재마트도 규제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규제 확대를 건의한 것이다. 이날 우 의장은 “‘정치는 힘이 약한 자들의 강한 무기’라면서 소상공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협의해 소상공인 현안을 잘 전달하겠다”고 했다.
선을 그으면서 니 편 내 편 하는 정치가 산업과 만나면 대부분 일을 그르친다. 산업은 발전하고 융성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규제하고 금지하고 배척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알 법도 한 지난 10년이다. 아무도 반성하지 않으니 발전 없이 공전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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