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속 불평등을 마시다 … 생수병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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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음료수병은 5000억개가 넘는다.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병입생수 산업이 벌이는 이른바 '수돗물과의 전쟁'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미국 성인이 마시는 물의 44%가 병입생수라는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목인 '언보틀드'는 말 그대로 플라스틱병 속에 갇혀 상품화된 물을 해방해 모두의 공유재로 되돌려주자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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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음료수병은 5000억개가 넘는다. 이 중 미국에서 재활용되는 비율은 27% 미만이며, 전 세계로 보면 7%에 불과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산은 그 자체로 재앙이지만, 그 뒤편에는 더 거대하고 서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리가 '깨끗하고 편리하다'고 믿으며 마시는 병입생수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공공 수도 시스템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포틀랜드주립대의 사회학 교수인 대니얼 재피는 '언보틀드'를 통해 병입생수의 연대기를 추적한다. 40년 전만 해도 특정 소수만이 즐기던 사치재였던 생수는 어떻게 연간 3000억달러 규모의 거대 산업이 되어 식수권을 장악했을까. 저자는 10여 년에 걸친 인류학적 현장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생수병에 갇힌 자본의 민낯을 폭로한다.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병입생수 산업이 벌이는 이른바 '수돗물과의 전쟁'이다. 네슬레, 다논, 코카콜라, 펩시로 대표되는 '빅4' 기업들은 기만적인 마케팅을 통해 수돗물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대중의 무의식에 심었다. 수돗물이 외면받을수록 공공 인프라 개선을 위한 사회적 투자 압력은 낮아지고, 자금 부족으로 노후화한 수도관은 다시 수돗물의 질을 떨어뜨리는 절망적인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미국 성인이 마시는 물의 44%가 병입생수라는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이를 두고 "병입생수의 성장은 수도 민영화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경고한다.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가 플라스틱병에 갇혀 상품이 되는 순간, 저소득층의 식수 접근권은 박탈되고 물은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에게 흐르게 된다.
책은 비관적인 폭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캐나다와 미국, 브라질 등에서 글로벌 기업의 무분별한 지하수 추출에 맞서 승리를 쟁취한 지역 주민들의 '물 정의 운동'에 주목한다.
제목인 '언보틀드'는 말 그대로 플라스틱병 속에 갇혀 상품화된 물을 해방해 모두의 공유재로 되돌려주자는 선언이다.
저자는 이제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기 보증금법을 대폭 확대해 생수 판매 기업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도시 계획 단계부터 공공 음수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공공 수도 시스템을 되살리는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비록 막대한 비용이 들지라도, 잘 관리되는 상수도 네트워크야말로 다수의 시민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든 생수 한 병이 환경오염을 넘어 자본주의, 불평등 그리고 인권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일깨운다. '언보틀드'는 2024년 미국사회학회 환경사회학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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