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를 함께 달린다...선수 출신 카메라맨이 바꾼 올림픽 피겨 중계

한영원 기자 2026. 2. 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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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여자 피겨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미국의 알리사 리우 선수를 촬영 중인 조던 코완./로이터 연합뉴스

전직 피겨 선수가 올림픽 빙판 위에 다시 섰다. 선수가 아닌, 카메라맨으로서다.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장에 위아래로 흰 수트를 갖춰 입은 남성이 카메라와 함께 들어섰다. 그는 맞춤 제작한 카메라 장비를 들고서는 갓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환희, 실망 등 ‘가장 사적인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기존 중계가 기술과 점수에 초점을 뒀다면, 그의 카메라는 연기 직후의 감정과 여운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바로 미국의 전직 피겨 선수 조던 코완(36)이다. 사상 최초로 빙판 위 촬영이 허용된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카메라맨으로 데뷔했다. 선수로서 서지 못했던 꿈의 무대에 카메라와 함께 선 것이다.

코완은 직접 설계한 카메라 장비를 착용하고 선수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촬영한다. 그는 “이게 나만의 새로운 스포츠”라고 했다. 2012년 은퇴 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피겨 영상들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 반응은 미미했지만 점차 알려지기 시작해 그는 영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댄싱 온 아이스(Dancing on Ice)’의 첫 카메라맨으로 일하게 됐다.

코완은 “프로그램이 끝난 선수가 혼자서 관중을 온전히 느끼는 그 짧은 순간이 있다”며 “빙판 위에서 직접 촬영하면, 이전에는 결코 포착할 수 없던 특별한 장면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열린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무대에서 점프 과제 7개 중 4개를 놓친 일리야 말리닌(미국)의 경기 직후를 카메라에 담았다. 연기를 마친 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삼키는 듯한 말리닌의 표정, 그리고 그 뒤로 조용히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담겼다. ‘쿼드 갓(4회전 점프의 신)’으로 불리던 그의 낙담한 표정과 그를 향한 위로의 박수가 교차하며 경기장의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코완은 본인이 괜히 빙판이라는 ‘성스러운 공간’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작업이 빙판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 무대에 ‘올 화이트’ 복장으로 섰는데, 이 또한 빙판이라는 배경에 잘 녹아들어 오로지 선수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주관 방송기구 OBS가 드론, 상공 카메라 등 다양한 시도를 확대한 가운데 코완의 카메라는 영상 혁신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직접 촬영한 피겨 영상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oniceperspectives) 팔로워는 이제 35.4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 시도해보고 싶은 목표가 많다. 하계 올림픽에서 수영, 육상 같은 여름 스포츠 중계에도 도전해보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제가 뒤로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좋아해 준다면, 뒤로 걷는 모습도 좋아해주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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