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라는 정체성 투쟁…‘정치의 축소’가 부른 ‘팬덤정치’의 확장 [하헌기의 콘텍스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2026. 2. 20. 15: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은 말하지 않는 ‘뉴이재명’…‘권력투쟁’에 동원되고 있는 ‘팬덤정치’
보수의 ‘진박 감별’ 닮은꼴?…민주진영 자체가 ‘기득권화’됐다는 방증

(시사저널=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뉴이재명'이라는 조어가 화제다. 신제품이라도 나온 줄 알았다. 보통 브랜딩을 할 때 '뉴(New)'를 붙이는 경우가 언제일까? 완전히 신제품은 아니지만 업그레이드 변경 폭이 꽤 클 때,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할 때 등이다. 완전히 낯선 시장에서 새로 시작하는 리스크를 줄이되, 소비자에게 새로워 보이길 원할 때 사용하는 '이미지 리부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왕왕 등장하는 전략이다. 이념적 정체성은 유지하되, 정계 개편 속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을 때 '뉴'를 호명한다. 새로운진보, 진보신당, 새로운물결, 신한국당 등 '새'와 '신'이 붙은 각종 당명과 정치적 프로젝트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물론 이를 막상 뜯어보면 이념 자체가 새롭다거나 정책 노선 자체가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예는 별로 없다. 

일종의 권력투쟁적 성격이 더 강하다. 세력이 합쳐져 '뉴'가 붙든, 분할되어 붙든 마찬가지다. 정책으로 경쟁하는 예는 별로 없다. '기존 주류는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가짜고, 우리야말로 충실하게 정체성을 지키는 진짜이기 때문에 이제 구주류는 퇴장하고 우리가 주류가 돼야 한다'는 식의 정체성 인정 투쟁이 주로 더 강하게 작동한다. 

2025년 2월11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 ⓒ유튜브 캡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뉴이재명'이란 조어

이런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실패로 귀결되곤 했다.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한때 유행했던 친박 논쟁을 보라. 보수에서 비박을 쳐내고 친박만 남기니 '이제 우리 모두 친박이다'로 귀결되던가? 거기서 또 친박, 진박, 멀박 등으로 더 잘게 쪼개졌고, 권력암투 끝에 남은 건 다 같이 가루가 되는 결말이었다. 남과 나를 구분 지어 상대는 배척해야 할 가짜고, "내가 진짜"라는 정체성 투쟁은 본질상 필연적으로 전체 파이가 쪼그라드는 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합쳐서 만든 '뉴'들이라고 해서 늘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브랜드 파워 자체를 흔들 정도의 짬뽕은 오히려 그 세력의 존립을 위협한다.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이낙연의 새로운미래와 정의당 탈당파들은 애초에 다른 노선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그걸 억지로 짬뽕해 버리니 어떻게 되던가? 비빔면도 시장이 있고, 짜파게티도 시장이 있으니 '비빔짜파게티'를 만들면 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설프게 하면 두 소비자 모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뉴이재명'은 어떨까? 보아하니 '뉴이재명'은 신형 대통령이 출시되었다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이 대통령의 신형 지지층'을 호명하는 조어인 모양이다. DJ(김대중)·운동권·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과 달리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당원으로 유입됐거나 대통령 취임 이후 중도·보수적 색채의 정책에 공감해 새롭게 합류한 민주당 지지층을 뜻한다. 

이 조어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 논쟁 국면에서 급부상했다. 친문(親문재인) 등 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은 혁신당과의 합당을 원하는데 '뉴이재명'은 그것이 이재명 정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판단해 반대한다는 구도로 많이들 소비하는 것 같다. 이 '뉴'는 통합 논쟁으로 촉발된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찐명 분할 논쟁에서 발현되는 것인가, 매우 혼탁한 '뉴'가 아닐 수 없다.

통합이든 분할이든 이런 '뉴'들이 실패하는 까닭은 본령으로서의 정치의 작동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령은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되 그 안에서 접점을 찾아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일이다. 이는 노선투쟁이나 정책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고, 아니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려면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유지한 채 중심을 잡고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큰 등뼈가 있어야 한다. 기계적 통합은 전자를 훼손하고, 분할해 구분 지어 배척하는 선명성 경쟁은 후자를 분쇄한다. 이런 전개는 본령으로서의 정치를 작동시키기보다 주로 세력 간 화력 경쟁을 촉진한다. 후자의 병력은 '팬덤정치'다.

'대중주의'(학술적 의미의 '포퓰리즘')와 '팬덤정치'의 차이가 뭘까? 왜 그 두 용어는 구분되어 있을까? 대중주의는 엘리트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엘리트주의를 거칠게 요약하면, 전문성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대중에게 휘둘리지 말고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뛰어난 이들이 권한과 책임을 지고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대중주의는 반대다. 소수에 의한 지배를 견제하고 전체 대중의 총의에 따라 사회가 운영돼야 하며, 그 결과도 대중 속 개개인이 책임을 진다는 주장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이 둘은 때때로 길항을 하긴 하나 기본적으론 혼합돼 있다. 요즘의 '당원주권'이나 '1인 1표제' 같은 개념도 이 둘이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주권자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와 이해관계가 다른 각 주권자의 의지를 더 잘 반영해 합의를 견인할 수 있는 대의제가 유기적으로 조합되어 발전하는 것이 더 성숙한 민주주의 정치가 되는 길이라고 본다.

'팬덤정치'는 이런 개념들과도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대중과 엘리트의 길항 구도와도 다르게 팬덤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대중 사이에서도 대립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팬의 어원 자체가 '파나틱'에서 유래했다. 광신자란 뜻이다. 돔은 '세력'이란 뜻이다. 팬과 돔의 합성어가 팬덤이다.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용어다.

2025년 10월3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유튜브 캡처

권력투쟁의 수단이 된 팬덤정치

팬덤정치가 나쁘게만 작용한 건 아니다. 진보진영은 대중주의와 함께 성장해 왔다. 근현대사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소수의 군사독재 세력을 전복해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을 근간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팬덤정치와 유사한 동력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지배층뿐만 아니라 각 영역의 기득권 카르텔을 대표하는 이를 꺾고 궁극적으로 일반 대중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집권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DJ의 집권은 군사독재 세력에 대한 대중의 완전한 승리였고, 노무현의 승리는 노사모의 승리였다. 

'뉴이재명'은 어떤가? '군사독재 세력에 저항하는 구심점으로서의 DJ와 그 지지층' 그리고 '보수 기득권 혁파를 상징하는 노무현과 노사모'와 비슷한 결인가? 언젠가부터 민주진영에서 팬덤정치의 동력이 대중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필요로 사용되기보다 '진박 논쟁'처럼 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에 동원되는 예가 잦아졌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중 하나는 민주진영 자체가 기득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재명은 정작 '뉴이재명'을 호명하지 않는다. 그 동력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혹자는 팬덤정치 확장의 폐해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팬덤에는 죄가 없다. 정치의 축소가 팬덤정치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어떤 팬덤의 동력은 늘 정치철학이 부재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탐낸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사저널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