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 수필 ] 산에서의 행복 - 가을 - ①

황대연 객원기자 2026. 2. 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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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혈기의 녹음도 알록달록 새옷을 입었다 지는 것
가을을 지나온 여름으로 되돌릴 수 없듯 인간사도 같은 것

[<사람과 산>  황대연  객원기자]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봄이 왔다 싶으면 이내 여름이고 가을이 왔다 싶으면 바로 겨울에 접어든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이러다가 봄가을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을 맛봐야 하지 않을까.

물러가지 않을 것 같던 폭염이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그 자리에 가을이 들어섰다. 폭염이라는 녀석은 뭐가 그리 급한지 6월부터 찾아와 풀잎에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나서까지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 온도계 눈금 몇 개 더 올라갔을 뿐인데 몸은 물론 마음까지 축 처진 나날이었다. 늦게나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엿가락 늘어지듯 축 늘어진 몸과 마음에 다시 생기가 감돈다. 기다리던 가을이다.
서운산 단풍 풍치

기다리던 가을이 왔으나 가을산이 영 마뜩찮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일교차가 크지 않고 비가 자주 와 일조 시간이 짧았다. 덩달아 단풍도 늦게 들고 볼품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가을은 가을이다.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산을 만든다. 그러니 사람들의 발걸음은 저절로 산으로 향한다.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은 단풍 반, 사람 반이다. 자칫 단풍보다 사람에 취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호젓한 곳은 어디 없을까?어디든 가려던 참이었는데, 마침맞게 안성 산우(山友)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운산 단풍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며 단풍 구경이나 하자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배낭을 꾸렸다.

서운산 동북쪽 기슭에 자리한 석남사에서 숲길에 들어선다. 가을 같지 않은 가을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산 전체에 가을이 곱게 내려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나무들이 저마다 색동옷을 차려입어 온 산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그야말로 만산홍엽(滿山紅葉)! 일 년 만에 보는 단풍이 임을 본 듯 반갑기만 하다.
계곡을 따라 펼쳐진 그림 같은 가을 풍경, 높고 파란 하늘,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청명한 가을 햇살, 숲속을 드나드는 맑은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을을 일러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어리석은 나조차 사색에 잠기는 걸 보면 그 말의 뜻을 알 것만 같다.

한때는 짙은 녹음으로 왕성한 혈기와 넘치는 정열을 뽐냈을 나무들이 아닌가. 그런 나무들이 찬바람이 불어오자 광합성을 멈추고, 가는 세월이 아쉬워서인지 한껏 치장하고 고운 옷을 차려입었다. 그래봤자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인지 그 모습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수수하면서도 아름답다. '단풍, 참 곱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서운산 단풍길 등산

문득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 '산행(山行)'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단풍이 아무리 곱다 한들 청춘을 상징하는 봄꽃보다 더 곱기야 하겠느냐만, 시인은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고 노래했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수레 멈추고 앉아 늦은 단풍숲 즐기니
서리 맞은 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

나는 단풍나무를 보면 바이올린이 떠오르곤 한다. 바이올린 중에서도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바이올린. 17세기 최고의 현악기 제작자인 이탈리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들었고, 최근 경매에서 무려 한화 약 224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바이올린 말이다. 우리나라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도 한때 이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었다고 한다.

이 바이올린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풍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부숴버리는 장인정신에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장인을 만나면 시대를 풍미할 작품으로 거듭날 수도 있는 것이 눈앞의 단풍나무들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산행 수필 ㅣ 산에서의 행복 - 가을 - ②에서 이어집니다.]

글.사진 황대연 객원기자 │ 백두대간 종주 등 2,900여 개의 국내 산과 킬리만자로 등 9개의 해외 산에 올랐다. 저서 『백두대간에 서다』, 『은퇴산꾼 고산에 서다』, 『헤어날 수 없는 사랑』, 『맹물에 조약돌을 삶아 먹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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