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그 청년…복지 사각지대 비추는 ‘멘토 쌤’으로

전새날 2026. 2. 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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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꿈드림센터 멘토 최성규씨 인터뷰
학교폭력에 자퇴 선택…이끌리듯 찾아간 센터에서 ‘마음 근육’ 단단히 키워
학교 떠났지만 학업 필요한 이들에 ‘멘토링’…단순한 봉사 아닌 복지 선순환
최성규 씨가 대구 달서구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대구 달서구에 있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꿈드림센터)에서 지냈던 최성규(26) 씨. 몇 년 만에 이곳 문을 열고 다시 들어서는 순간. 그는 안식처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 어제 본 사람처럼 안부를 묻는 목소리,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던 공간. 지난달 29일 달서구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그는 그날을 “다시 숨이 트인 날”이라고 표현했다.

성규씨는 지금 이곳에서 또 다른 학교 밖 청소년을 돕고 있다. 과거 도움을 받던 자리에서 이제는 도움을 건네는 쪽에 서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폭력을 겪었고 규율적인 생활은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다. 희망도 목표도 없었다.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장소’가 됐다. 자퇴를 선택했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자유가 아닌 고립이었다. 한 번 방 안에 틀어박히면 한두 달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를 다시 사회로 이끈 곳이 꿈드림센터였다. 자퇴를 앞두고 이 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센터. 학교를 떠난 그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꿈드림센터에 갔다. 좁은 사무실 한쪽에 앉아 선생님들의 출근과 퇴근을 지켜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누가 왜 왔냐고 물으면 ‘그냥 왔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거기 머무는 시간 자체가 그에겐 회복의 과정이었다.

꿈드림센터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근육’을 키웠다. 서서히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고 누군가를 돕는 봉사활동에도 도전하게 됐다.

그는 센터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준비하던 학교 밖 청소년 3~4명과 함께 공부했고 대학에 합격했다. 바쁜 일상이 시작되면서 꿈드림센터와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사회에 나온 성규씨는 또다시 깊은 우울감에 부딪혔다. 기대했던 대학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꿈드림센터에 다닐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상태가 정반대였다”며 “내가 속해있는 집단이지만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겉돌았다”고 말했다. 사진을 전공했던 첫 번째 대학교를 자퇴한 뒤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 두 번째로 다니던 대학교도 1학년을 마친 후 휴학했다.

지친 마음이 들자 문득 ‘센터의 선생님들은 아직도 계실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찾은 꿈드림센터에서 그는 변하지 않은 풍경을 마주했다. 그는 “얼굴도 잊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바로 이름을 불러주셨다”며 “놀라는 기색 없이 평소처럼 맞아주셔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최씨가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 중인 모습. 본인 제공
최씨가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 중인 모습. 본인 제공

그 순간 성규씨는 다시 센터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성규쌤’으로 불리는 멘토 성규씨. 지금까지 그가 만난 학교 밖 청소년은 30여 명에 달한다. 많을 때는 동시에 3~4명의 멘티를 맡았다. 대학 기숙사에 살던 시절에는 매주 학교가 있는 대전과 대구를 오가며 왕복 3~4시간을 들여 멘토링을 했다. “무보수였지만 그땐 정말 (봉사활동에) 미쳐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학업 멘토링은 성규씨가 몰두한 활동 중 하나다. 그는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는 떠났지만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은 아니다. 재학생들보다 정보 취득 기회가 현저히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 밖 청소년만을 위한 입시설명회를 직접 기획했다. 교육청에 협조요청해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지를 기증받아 아이들이 모의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 과정에서 성적이 우수한 청소년을 발굴해 장학금을 지원했다. 학업동아리를 만들어 10여명의 청소년과 7개월의 시간을 함께했다. 검정고시와 수능 준비를 도왔고 정보 부족으로 입시 전형조차 잘 몰랐던 학생은 상담을 통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결실도 거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은둔형 남학생이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대화조차 쉽지 않았다. 그는 “그 친구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집중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느리지만 마음의 문을 열던 그 학생은 12주간의 멘토링이 끝나던 날, 감사했다며 ‘성규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고 한다.

성규씨는 센터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부족하다고 느껴 사진동아리를 만들었다. 예술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은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교 밖 청소년 박람회나 축제에 센터가 참여할 때면 빠지지 않고 현장을 도왔다.

현재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그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예술·디자인 교육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성규씨는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모두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며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시각을 길러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꿈드림센터를 거쳐 간 학교 밖 청소년은 많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다시 센터를 찾아 멘토 활동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규씨가 말하는 나눔의 목표는 단순한 봉사가 아닌 복지의 선순환이다. 그는 “꿈드림센터를 다니지 않았다면 은둔 청소년을 넘어 고립 청년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며 “제 인생을 바꾼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0대 시절에는 하지 못했던 사회 참여와 봉사 활동에 힘쓰며 한 사람의 성장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받은 복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

한 사람이 받은 도움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는 구조, 그것이 그가 꿈꾸는 나눔의 최종 목적이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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