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가성비? '램 가격' 폭등이 부른 좀 이상한 역설 [IT+]
제품 가격 폭등한 노트북 시장
AI 열풍으로 치솟은 부품값 영향
가격 인상 계획 없는 애플
‘프리미엄 가성비화’ 꾀하나
"지금이 제일 싸다." 주식시장에서나 통용되던 이 말이 노트북 시장에서 나돌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D램 등 전자기기 부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노트북 가격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다. 버티다 못한 제조사들이 줄줄이 가격표를 고쳐 쓰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 와중에 가격을 묶어둔 업체가 있다. 바로 애플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면서 노트북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0/thescoop1/20260220111229198qbgb.jpg)
가격표에 붙은 숫자가 작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D램 가격이 저렴해 보이는 건 반도체 시장의 거래 단위인 '비트(bit)'가 소비자에게 익숙한 '바이트(Byte)'보다 8배 작은 단위라서다.
16GB 램이 탑재되는 최신 노트북 1대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1GB(기가바이트)는 8Gb(기가비트)이므로 8Gb짜리 D램 칩 16개가 필요하단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가격 상승 추이를 적용하면 1년 전 21.6달러(약 3만1417원)였던 구매 가격은 현재 148.8달러(약 21만6429원)로 껑충 뛰어오른다. 단순 계산으로도 램에서만 18만원이 넘는 추가 원가가 발생한 셈이다.
메모리뿐만 아니라 중앙처리장치(CPU), 인쇄회로기판(PCB) 등 노트북에 들어가는 다른 부품들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이 앞다퉈 건설 중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부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탓이다.
지난 1월 27일 투자은행 키뱅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텔과 AMD는 서버용 CPU 가격을 최대 15%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인텔은 1월 22일(이하 현지시간) 실적 발표회에서 "CPU 공급 부족 현상이 올해 1분기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함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노트북은 얼마나 비싸진 걸까. 사례를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 1월 26일 신제품 '갤럭시북6 프로'를 국내 출시했다. 가격은 옵션에 따라 271만~351만원(이하 자사 홈페이지 기준)으로 책정됐는데, 갤럭시북 프로 모델의 출고가격이 300만원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 뉴시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0/thescoop1/20260220111230479qmdg.jpg)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1월 초 출시한 LG전자 신제품 'LG그램 프로 AI 2026'의 출고가는 314만원으로, 성능이 유사한 2025년형 제품(264만원)보다 50만여원 올랐다. 미국 제조사인 델(Dell)도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상업용 노트북 가격대를 10~30% 인상했다.
중국 기업 레노버(Lenovo) 역시 올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모든 제품의 가격을 15~30%까지 끌어올렸다.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보급형 라인업의 경우, 메모리 용량을 줄이는 등 스펙을 낮추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이런 와중에 애플만은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 기존 제품들의 가격 변동이 없는 것은 물론, 곧 출시할 신제품의 가격 인상 소식도 나오지 않고 있다.
미 IT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은 1월 25일 기사에서 "애플이 조만간 새로운 맥북 프로 모델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애플은 이번 신제품의 가격을 조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놨다. 애플이 제품에 이미 높은 마진율을 책정했기 때문에, 부품 가격 상승의 압박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나인투파이맥은 기사에서 "애플은 맥북(애플 노트북) 옵션에서 램 용량을 16GB에서 32GB로 늘릴 경우 400달러를 청구하는데, 현재 16GB 램 1개 가격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약 230달러"라면서 "현재 메모리 시세로도 애플은 손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므로 당장 가격을 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0/thescoop1/20260220111231932zvfu.jpg)
시장점유율 27.2%로 업계 1위를 차지한 레노버(14.3%)를 비롯한 HP(12.1%), 델(18.2%) 등 상위권 제조사들의 출하량 증가율이 5%대에 머문 애플과 달리 두자릿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애플이 브랜드 명성만큼 점유율을 끌어올리지 못한 원인은 '콧대 높은 가격'에 있다. 노트북 가격은 다른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른바 '애플세(Apple tax)'라 불리는 고가의 옵션 정책이 소비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일례로, 애플은 앞서 언급했듯 노트북 램을 16GB에서 32GB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400달러(약 58만원)를 청구해 왔는데, 이는 경쟁 제조사 업그레이드 비용의 2~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전례 없는 부품가 폭등'이 노트북 시장을 덮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경쟁사들이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소비자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사이, 가격 동결을 택한 애플의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기묘한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과거 범접하기 힘들었던 애플의 가격표가 이제는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이는 '프리미엄의 가성비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애플은 그동안 한번도 출시한 적 없었던 '가성비 노트북'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IT매체 맥루머스는 애플이 오는 3월 4일 개최하는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보급형 맥북을 선보일 거라고 발표했다. 업계 안팎에서 이번 '메모리 대란'을 계기로 애플 점유율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애플 노트북을 사재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애플이 노트북 가격을 동결하면서 향후 시장 입지가 지금보다 공고해질 거란 분석이 나온다.[사진 |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0/thescoop1/20260220111233206pxor.jpg)
어쨌거나 부품 가격이 상승해 노트북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업계가 고사양 부품을 원하는 병목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이병훈 포항공대(전자전기공학) 교수는 "과거엔 메모리 가격이 비싸지면 저가 메모리로 대체하곤 했지만, 이는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면서 "요즘 노트북 성능이 상향 평준화해서 고성능 메모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메모리 가격이 낮아질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노트북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 애플은 이런 격변의 시대에서 웃을 수 있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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