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으로 풀려난 전직 대통령들…尹에겐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이혜영 기자 2026. 2. 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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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피고인’ 전두환의 길과 닮았지만…사면 가능성은 안갯속
계파·지지층 이완 속 여권은 ‘사면 제한’ 입법 카드까지 검토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미결수'. 전직 대통령을 수사·구속했던 '단죄의 검' 윤석열 전 대통령 그 자신이 역사의 법정에 선 다섯 번째 피고인이 됐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란의 정점'으로 추락한 윤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밟은 잔혹사를 피해 가지 못했다. 30년 만에 내란죄를 역사의 법정으로 소환한 윤 전 대통령이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걸었던 '특별사면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사형수' 김대중 지원사격에 풀려난 전두환

1996년 8월26일, 나란히 선 두 전직 대통령이 손을 맞잡는다. 정치의 무대가 아닌 법정에서 수형복을 입고 운명의 날을 맞이한 인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은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등의 혐의로 1995년 11월 구속됐다.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1995년 7월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한 지 약 2년 만에 두 전직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은 기결수로 전락했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 시절 12·12 군사반란 모의재판에서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청년 윤석열'의 철퇴가 17년 후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지 불과 7개월 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된다. 전 전 대통령은 750일, 노 전 대통령은 767일 만에 풀려났다. 전 전 대통령은 구속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중한 형을 선고받고도 최단 기간 수감생활을 했다. 뇌물·횡령 혐의로 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958일, 국정농단 및 공천 개입 등 혐의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기까지 1736일간 구속돼 있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대통령 재임 기간(1475일)보다 구속된 기간이 더 길었다.

내란 혐의로 기소된 두 전직 대통령의 족쇄를 풀어준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1997년 12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모두 사면·복권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두 명의 내란 사범을 사면하면서 내건 명분은 '국민 대화합'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탈피를 위한 단결'이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던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은 석방이 현실화하자 예상대로 대립과 충돌을 불러왔다.

정권 교체기에 정치적 부담을 완충하려는 임기 말 대통령과 출발을 앞둔 당선인의 정치적 결정에 여론은 출렁였다. "국민에게 총칼을 겨눈 이들에 대한 사면 결정은 법치주의의 후퇴"라는 비판과 "절체절명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가 맞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이 결정된 후 "나는 전두환씨 등에게 사형 선고를 받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보복의 악순환은 이제 끝내야 하고, 국민 대화합 없이는 현재의 (IMF) 경제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며 '용서와 화해'라는 정치철학을 전면에 내걸고 성난 민심을 설득했다.

"차원 다른 尹 혐의, 여론 빗장 풀기 어려울 것"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때도 여론은 쪼개졌다. 헌정사 최초로 국정농단 혐의를 받고 파면된 박 전 대통령, 11년간 부인했지만 결국 '다스 실소유주'임이 드러나고 110억원대 뇌물 혐의까지 받았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론은 싸늘했다. 기류가 바뀐 것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사면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 공략을 위한 경쟁적 사면 이슈화에 더불어민주당 주자까지 참전하면서 판이 커졌고 '사면 찬성' 여론이 점차 힘을 받았다.

고심을 거듭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21년 12월 박 전 대통령만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한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사면이 불발됐던 이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22년 12월 사면돼 출소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사 윤석열'이 각각 서울중앙지검장과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서 수사와 구속, 기소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단죄하려 했던 대상들이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와 당선 이후에도 "검사 윤석열이 잡은 피고인들을 대통령 윤석열이 사면하고 풀어준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촛불행동 관계자들이 2월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중형을 선고받고도 '5년 이상'의 수감생활을 한 전직 대통령은 없다.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한 역대 대통령들은 수감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법 앞에 예외'를 인정하며 석방 '퇴로'를 열어줬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 사면은 과거와 동일한 맥락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윤 전 대통령은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반헌법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데다 정치적 동력마저 부재해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윤석열 사면=금기어'로 굳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사기관의 체포·구속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까지 거듭 계몽령을 내세우며 '무죄'를 강력하게 설파한 것은 윤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법정에서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나 반성 없이 "계엄 수사가 바로 내란"이라고 항변한 것도 마지막 방패인 '윤 어게인' 지지층에 보내는 여론전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1년 전인 2025년 1월 체포·구속 국면에서 한남동 관저 앞 대로변을 메웠던 강성 지지층 규모는 2026년 2월19일 현재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심 선고를 기점으로 국민의힘은 거리두기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사실상 '정치적 고립' 상태에 놓인 윤 전 대통령이 선거를 비롯한 주요 정치적 이벤트나 변곡점마다 옥중 메시지를 내더라도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정치적 결정인 사면은 현 정권의 국정 지지도와 직결된다. 과거처럼 사면을 통한 '명분'이나 '실리'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거센 역풍이 불가피해 어느 정권이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카드를 꺼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딛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는 사면권 원천봉쇄가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청와대 참모를 지낸 한 야권 정치인은 "과거 전직 대통령 사면은 견고한 지지층과 계파적 토대 위에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을 얹어 여론을 설득해 가는 과정이었고, 진영 간 '약속대련'이 펼쳐지기도 했다"며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행위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의 결이 다르다. 1심 선고를 기점으로 '정치적 타협 불가' 여론이 더 응축될 개연성이 커 사면이라는 '빗장'을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윤 전 대통령의 조기 출소를 막기 위한 정치권 움직임도 가시화 됐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내란·외환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감형 제한과 사면 확정 전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20개 넘게 발의한 상태다. 2월20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 안건에도 내란범에 대한 사면·복권 등을 금지·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월19일 1심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에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곧 내란범 사면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현재 제출된 법안들은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이를 둘러싼 위헌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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