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네맙, 허가 이후 커진 급여 논쟁

2월 18일, 네덜란드 국가의료평가기관인 조르힌스티투트 네덜란드(Zorginstituut Nederland, ZIN)는 레카네맙을 네덜란드 건강보험의 기본 보장 패키지 '바시스파켓(Basispakket)'에 포함하지 말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공식 권고했다.
ZIN은 보도자료를 통해 레카네맙이 인지 저하 속도를 통계적으로 늦춘다는 결과는 확인됐지만, 환자의 일상 기능과 삶의 질을 충분히 개선한다고 보기 어렵고, 뇌부종·뇌출혈 등 ARIA(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 위험이 있다는 것 등을 건강보험 보장 제외 이유로 밝혔다.
또한 격주 주사 투여와 반복적인 MRI 모니터링에 필요한 의료 인력과 장비가 네덜란드 의료 시스템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권고' 단계이며 최종 결정 권한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제도상 ZIN의 패키지 권고는 정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번 판단은 사실상 레카네맙을 공적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정책적 방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질병 진행을 늦추는 약"… 체감 효과는?
레카네맙은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처럼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약이 아니라,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해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개발됐다. 이 때문에 그동안 '질병 조절 치료법(Disease-Modifying Therapy, DMT)'으로 불려 왔다.
최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질병 조절' 대신 '질병 표적 치료(Disease-Targeted Therapy, DTT)'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질병을 '수정'하거나 '변화시킨다'는 표현이 과도한 기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조절'이나 '표적'이라는 표현은 완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행을 일정 부분 늦추는 것을 뜻한다. 실제 임상시험에서는 인지 저하 속도를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늦췄다는 결과가 보고됐지만, 그 변화가 환자의 일상 기능과 삶의 질을 충분히 바꿀 만큼 큰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ZIN은 이번 권고의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임상적 유용성의 불확실성이다. 통계적 차이는 인정되지만,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만큼 의미 있는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둘째, 안전성과 의료 시스템 부담이다. 레카네맙은 뇌부종과 뇌출혈을 포함하는 부작용, 즉 ARIA 발생 위험이 보고돼 있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MRI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격주 주사 투여, 반복 영상 촬영, 전문 인력 투입은 한정된 의료 자원을 상당 부분 점유하게 된다.
네덜란드 당국은 이러한 인프라 부담이 다른 필수 의료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단순한 약값 문제가 아니라, 의료 자원의 기회비용까지 고려한 판단이다.
허가와 보험은 다른 문제
흔히 혼동하는 부분이 '허가'와 '보험 적용'의 차이다. 의약품 규제 기관의 허가는 "이 약을 써도 되는가"에 대한 과학적 판단이다. 효과와 위험의 균형을 평가해 시장 사용을 허용하는 절차다.
반면 공보험 급여 결정은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가치가 있는가"를 묻는다. 효과의 크기, 안전성, 대체 치료 여부, 재정 지속 가능성, 의료 인프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허가를 받았다고 자동으로 보험이 되는 구조는 아니다.
미국·일본은 조건부로 문 열어
미국에서는 연방 공보험 메디케어가 레카네맙에 대해 조건부 급여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자동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를 공식 등록 체계에 포함해 치료 결과와 부작용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근거 축적 조건부 급여(Coverage with Evidence Development, CED)' 방식이 적용된다. 제도적으로는 급여가 허용됐지만, 반복적인 MRI 모니터링과 전문 인력 요건 등으로 실제 사용은 의료기관의 준비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일본은 2023년 말 전 국민 건강보험(NHI)에 레카네맙을 등재해 약제비뿐 아니라 주사 투여와 정기 MRI 모니터링 비용까지 보장하고 있다. 고액의료비 제도를 통해 환자 본인 부담 상한도 적용된다. 형식상으로는 전면 급여 구조에 가깝다. 다만 ARIA 위험 관리와 투여 기관 요건이 필요해 처방은 신중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고가 치료가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지속적인 평가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영국은 제동
독일에서는 연방합동위원회(G-BA)가 기존 치료 대비 추가적인 유익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독일 제도상 약은 출시될 수 있지만, 추가 유익이 인정되지 않으면 보험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진다. 실질적인 급여 장벽이 형성된 셈이다.
영국에서는 의약품 규제청(MHRA, 한국의 식약처에 해당)이 사용을 허가했지만, 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국립보건임상평가원(NICE)은 비용 대비 효과를 충분히 인정하기 어렵다는 방향으로 검토해 왔으며, 현재 항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허가와 급여가 분리된 대표적 사례다.
중국은 민간 보험 경로
중국은 국가 공보험 등재 대신 '상업보험 혁신약 목록'에 포함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민간 보험 상품을 통한 보장 확대를 의미하며, 국가 재정이 직접 부담하는 공보험 급여와는 구별된다. 공적 급여가 보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적 흐름은 '급여 신중'
레카네맙은 다수 국가에서 규제 승인을 받았으나, 공보험 급여 단계에서는 보다 엄격한 검토가 이어지고 있다. 효과는 충분한지, 위험은 관리 가능한지, 의료 시스템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우선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이번 권고는 과학적 승인과 공적 보장의 경계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레카네맙은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춘다는 결과가 보고됐지만, 그 임상적 의미와 체감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결국 그 제한된 효과를 어느 수준까지 공적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승인 여부와는 별도로 각국이 다시 따져보고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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