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층 더 소외? '무료의 유료화' 국립중앙박물관 예민한 논쟁점

김하나 기자 2026. 2. 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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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인포그래픽
국립중앙박물관 체질 개선 시작
관람객 급증해 변화 필요성 대두
가장 주목할 건 유료화 도입 여부
내년 시범운영 목표로 시스템 구축
18년 무료 원칙 깨고 유료화 할까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관람객 650만명을 넘어섰다.[사진|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이 '700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3일 관람 방식과 운영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는 '2026 국립중앙박물관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박물관 운영 시간을 조정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수요일·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였던 개관 시간을 30분씩 앞당긴다. 휴관일도 확대한다. 지금까지 매년 1월 1일과 설·추석 당일에만 휴관했지만, 앞으로는 3·6·9·12월 첫째주 월요일을 추가해 연간 총 4회의 정비 휴관일을 운영한다. 이밖에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어린이박물관을 확장하는 등 관람 환경 개선 작업도 병행한다(표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유료화 전환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2027년 상반기 시범운영을 목표로 올해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박물관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국민 문화향유 수준도 성숙해진 지금이 유료화 적기라고 판단한 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8년 5월부터 상설 전시관을 무료로 운영해왔다. 해외 주요 박물관·미술관과 공동으로 여는 기획전만 유료 관람 방식이었다. 이번 유료화 논의는 18년간 이어온 '무료 원칙'을 손보겠다는 신호다. 박물관 운영 구조 전반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미다.

박물관은 유료화를 위해 먼저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연말까지 온라인으로 관람권을 예약·예매하고, 비대면 전자 검표와 모바일 티켓 발급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관람객 정보와 박물관 이용 현황을 수집·관리하는 고객정보통합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체계도 구축한다. 이는 향후 관람객 국적과 연령대, 방문 패턴 등의 통계를 확보해 입장료를 좀 더 합리적으로 책정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다(표②).

상설 전시 유료화, 이를테면 '입장료' 도입 여부는 시범 운영을 거쳐 판단한다. 이후 관계부처와 협의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처럼 변화를 꾀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관람객 급증에 따른 혼잡과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과밀화 우려를 직접 언급했다. 유 관장은 "올해 1월에만 관람객이 67만명에 달해 주당 평균 16만명이 박물관을 찾았다"며 "이 추세라면 올해 관람객이 700만명을 넘어갈 가능성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 개관 당시, 하루 최대 1만8000여명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이는 전시동의 규모, 시설, 관람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적정 수용 인원이다.

하지만 최근 관람객 증가 속도는 설계 기준을 사실상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K-컬처 열풍과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효과에 힘입어 관람객 650만7483명을 기록했다. 직전해(379만명)보다 1.7배로 늘어난 규모이자 1945년 개관 이후 가장 많은 수치였다(표③④).

관람객이 급증하면서 혼잡도 일어났다. 입장 대기줄이 길어지고, 전시실은 물론 주차장과 식당 등 편의시설 이용에도 불편이 잇따르고 있다. 관람 환경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설전시 무료화'를 폐지하고 유료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탄 이유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이 문화소외 계층이나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초기 성인 기준 2000원의 입장료를 받았지만, 2008년부터 관람객 증대와 문화향유 확대를 이유로 상설 전시를 무료로 전환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밀 해소와 문화 향유권 보호를 동시에 충족할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상설전시 유료화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요한 조치라는 데 무게를 두면서도, 방식의 유연성을 주문한다.

정란수 한양대(관광학) 겸임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현재의 관람객 규모를 고려하면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적정 수준의 입장료는 관람 수요를 조절하고 박물관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유료화를 도입하더라도 미성년자·노인·장애인 등 취약 계층은 무료를 유지하거나 감면폭을 확대하는 등 차등 요금 체계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초기 입장료를 받았지만, 2008년부터 상설 전시를 무료로 전환했다.[사진|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이 벤치마킹하기 좋은 사례도 있다. 세계 유명 박물관이 고안한 '이중가격제'다. 예컨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올해 1월 14일부터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등 비非유럽연합(EU) 출신 관광객의 입장료를 22유로(약 3만7000원)에서 32유로(약 5만4000원)로 45%가량 올렸다(표⑤).

일본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문화청은 인기 관광지인 도쿄, 교토, 나라 등의 국립박물관·미술관 11곳을 대상으로 이중가격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내 도쿄국립박물관은 최근 외국인 입장료만 2~3배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표⑥). 18년간 이어온 무료 원칙을 손보는 일은 결코 가벼운 작업이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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