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별이 폭발도 없이 사라졌다…‘초신성→블랙홀’ 공식 깨져

곽노필 기자 2026. 2. 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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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거대한 별의 핵이 핵융합 연료를 소진하고 붕괴하면서 두꺼운 가스와 먼지껍질을 방출한 모습을 묘사한 그림. 중심부에서는 뜨겁고 밀도가 높은 가스 덩어리가 블랙홀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일반적인 항성 진화 이론에 따르면 별은 핵융합 연료를 모두 태우고 나면 중력의 힘에 이끌려 중심핵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의 별들은 이 과정에서 서서히 작아져 백색왜성으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태양 질량의 8배가 넘는 거대한 별들은 급격한 중력 붕괴에 대한 반발력으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뒤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된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태양 질량의 16배가 넘는 가장 무거운 별들에게는 초신성 폭발 모델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거대한 별들의 중심핵은 붕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틈도 없이 블랙홀이 돼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보통 초신성이 발견되면 이전 관측 데이터에서 폭발 전의 원래 별(progenitor)을 찾아낼 수 있는데 태양 질량 16배 이상의 원래 별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실패한 초신성’(failed supernova)의 현장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은하에서 초신성 폭발은 한 세기에 고작 몇번일 정도로 드물게 일어나고, 다른 은하는 워낙 멀어서 관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에서 이에 해당하는 사례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연구진은 지금은 퇴역한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적외선 우주망원경 네오와이즈(NEOWISE) 관측 데이터를 찾아보다가 안드로메다은하에서 2014년에 밝아졌다가 몇년 후 어두워진 별 ‘M31-2014-DS1’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2023년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이 별의 현재 모습을 관측하려 했으나 빛이 너무 희미해져 가시광선 카메라에 전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연구진은 강력한 적외선 관측 능력을 갖고 있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이 천체를 관측할 수 있었다.

연구진이 최근 출판 전 논문 공유집 아카이브에 공개한 관측 결과에 따르면 제임스웹은 초속 100km의 속도로 팽창하는 아주 희미한 빛의 가스와 먼지껍질을 포착했다. 연구진은 이것이 핵 붕괴 직전에 방출된 별의 바깥층일 것으로 추정했다. 원래의 별은 태양 질량의 13배였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물질을 방출하고 태양 질량의 5배로 줄어든 상태였다. 연구진은 “별의 밝기가 극적으로 계속해서 감소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는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지 않고 별의 핵이 직접 블랙홀로 붕괴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검증을 위해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을 사용해 다시 이 별을 관측했다. 그 결과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일 때 흔히 방출하는 엑스선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예상된 결과였다. 가스와 먼지 껍질이 블랙홀에서 나오는 엑스선과 다른 빛들을 흡수한 뒤 가열돼 적외선 형태로 다시 방출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초신성 현상이 포착된 안드로메다은하.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을 비롯해 여러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실패한 초신성, 도처에 블랙홀 만들었을 수도

이번 연구를 이끈 키샬레이 데 교수(천문학)는 “이 정도 질량을 가진 별들은 항상 초신성으로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이 별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같은 질량의 별이라 할지라도 폭발에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아마도 죽어가는 별 내부에서 중력과 가스 압력, 그리고 강력한 충격파가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리버풀존무어스대 엠마 비저 교수(천문학)은 이 별을 실패한 초신성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라고 사이언스에 말했다. 원래 별의 질량인 태양의 13배는 실패한 초신성 모델을 적용하기에는 가벼운 질량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제임스웹과 찬드라엑스선 망원경의 데이터는 ‘두 별의 병합’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두 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엄청난 양의 먼지를 생성해 별빛을 완전히 가려버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장하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질량이 작은 별들도 곧장 블랙홀로 붕괴할 수 있다면, 실패한 초신성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흔할지도 모른다.

비저 교수는 만약 실패한 초신성이 사실이라면, 이는 은하 진화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초신성은 철이나 칼슘 같은 무거운 원소들을 우주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초신성 폭발이 흔하지 않다면 은하의 진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한 초신성은 물질을 밖으로 많이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블랙홀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는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무거운 블랙홀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중력파가 검출된 것도 설명해줄 수 있다.

데 교수는 “거대한 별이 폭발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5년 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이번 연구는 블랙홀로 이어지는 이런 종류의 항성 붕괴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Disappearance of a massive star in the Andromeda Galaxy due to formation of a black hole.

http://dx.doi.org/10.1126/science.adt485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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