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아빠, 테레비 좀 사주세요, 제발!” 오즈 야스지로의 천진난만한 코미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88번째 레터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입니다. 지난 11일 개봉했는데 더 늦기 전에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1959년 개봉작인데 전 이번에 처음 봤어요. 또 감탄했습니다. 60년도 더 된 얘기인데, 사람살이 어찌 이리 똑같은지. 어떤 장면에선 2026년보다 더 2026년 같아요. 특히 귀여운 두 형제의 엉뚱한 반항 덕분에 내내 즐거웠습니다. 보고있자면 60년 뒤의 우리 모습이 그려지는 영화, ‘안녕하세요’의 두 형제 집으로 들어가보실까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는 포스터부터 포스가 남다릅니다. 두 녀석이 앞을 바라보고 서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이는 표정이에요. 이 형제가 ‘안녕하세요’에서 양대 사건 중 하나인 침묵 시위의 주동자들입니다(다른 하나는 부녀회비 분실 사건). 야구가 보고 싶은데 집에 TV가 없거든요. 말씀드린 대로 1950년대 후반이 배경. 그 시절엔 큰 맘을 먹어야 들일 수 있는 최신 전자제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아빠가 “TV는 전 국민 백치화의 근원”이라며 안 사줍니다. 사달라고 조르다가 “쓸데없는 말 한다”며 혼이 나자, 형제는 “그렇다면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곤 정말로 말을 안 해요. 밥 달라는 말도 못하고, 급식비 받아오라는 학교 선생님 전달 사항도 전할 수가 없고. 시위 대상인 부모는 느긋하고 정작 답답한 건 두 형제인데 그렇다고 쉽사리 시위를 풀 수도 없고. 유치하지만 귀여운 시위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두 형제만 심각한 시위 주변에선 어른들의 탐정 놀이가 한창입니다. 동네 부녀회비가 분실됐거든요. A씨는 B씨에게 전달했다고 하고, B씨는 동네 반장에게, 반장은 부녀회장에게 전달했다고 하는데 부녀회장은 못 받았다고 합니다.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들은 반장댁이 얼마 전 들여놓은 세탁기를 의심합니다. 혹시 부녀회비로 세탁기를? 수상한 세탁기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음모론. 정말로 부녀회비는 어디로 간 걸까요.

우리로 치면 아파트 한 동 정도 공간에 복작복작 모여사는 공동주택, 좁은 골목을 분주히 오가는 ‘안녕하세요’의 동네 사람들을 보다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고도의 CG로 마블 영화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아닐까, 하고요. 그냥 우리 동네 이야기인 거 같은데 스크린 속 반장댁 마루에 앉아 같이 궁리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아빠는 과연 TV를 사줄지, 사라진 부녀회비의 행방은 밝혀질지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렇다고 수수께끼만 풀자고 하는 건 아니고요. 영화 제목 ‘안녕하세요’가 말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TV 사달라는 형제에게 아빠가 “쓸데없는 말”이라고 꾸짖자, 형제가 “어른들이야말로 쓸데없는 말이나 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날립니다. (일본어로는 오하요, 곤니치와, 곰방와로 다르게 말하는) ‘안녕하세요’ 인사야말로 쓸데없지 않느냐, 만날 때마다 날씨는 왜 서로 물어보느냐, 사실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물어보지 않느냐고요. 그에 비하면 “텔레비전 사달라”는 요구는 엄청나게 쓸모가 있다는 게 두 형제의 주장입니다. 그럴 듯 하죠?
그런 쓸데없는 말을 열심히 주고받으면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하는 어른들도 등장합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못해 “날씨 좋네요” 인사만 주고 받는 커플이 나오는데요, 두 남녀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말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만날 구실을 만들어 냅니다. 사실은 이렇게 쓸데없는 말들이 가장 쓸 데가 있다는 걸 알게 될 즈음, 두 형제는 어른이 되어있겠지요. 평소엔 소중한 줄 모르지만,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절실해지는 일상이라는 의식의 의미를 묻는 질문, ‘안녕하세요’가 상징하는 ‘쓸데없음’에 대한 오즈 야스지로의 답은 영화 끝부분에 아주 분명하게 들어있습니다.

제가 제목에 ‘안녕하세요’를 코미디 영화라고 적었는데, 중간중간 유머가 만화책 같아요. 동네에 방판원이 수시로 출몰하는데, 이들이 파는 것은 고무줄, 칫솔, 연필, 수세미 등등. 어느 집에 가선 “연필 사라”며 큰 칼을 꺼내 위협하듯(그러나 전혀 위협은 안 되는) 연필 깎는 시범을 보이는데, 이에 맞서 할머니가 커다란 사시미 칼을 들고 대결하듯 연필 깎는 장면은 자못 진지한 분위기로 전개돼 더 웃겨요.
사이사이 유머를 끼워넣으며 진짜 전하고 싶은 감독의 깊은 시선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적응하든 못하든 맞춰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 텔레비전과 세탁기가 상징하는 시대상은 2026년 지금에 적용해도 비슷할 거 같아요. ‘전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는 텔레비전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유튜브쯤 되려나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도 안 읽고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바보상자의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막강하네요.
60년 전 대사지만 지금 지하철 옆자리 승객도 비슷하게 나눌 것 같은 대화도 나옵니다. ‘안녕하세요’의 술집에서 두 손님이 만나 말합니다. “정년 말이오. 끔찍한 거죠. 생매장 당하는 거예요. 회사에선 정년되면 밥도 안 먹는 줄 아는데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잖아요. 마누라는 일 찾으러 가라고 내몰고. 끝이 안 보이는 진창길이에요. 하늘 아래 이 한 몸 쉴 곳도 없고. 허무합니다. 30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콩나물 시루 전철에 시달렸는데. 허무해요.” 평생 한 직장 근무가 당연시되던 그때의 일본과 요즘의 한국은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요. ‘안녕하세요’에서 이 대사를 말한 인물은 영화 후반부에 어떤 계기를 맞습니다. 그 계기는 형제들의 침묵 시위 결과와도 연관이 있고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촘촘하게 다 연결이 돼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알게 모르게 엮이고 연결돼 어울려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인 것처럼.
부녀회비 실종 사건도 결국 전모가 밝혀집니다. 이건 중간에 드러나는데,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음모론이 등장하고요. 왜냐, 어른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고 대화를 하면서 쓸데없는 말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니까요. 과연 어떻게 펼쳐지고,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안녕하세요’를 보시면서 즐겨보세요. 편안하게 보다보면 미소짓다가 뜨끔하다가 맞장구를 치시게 될 거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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