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까지 번진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무엇을 만들 것인가' 빠진 특별법

김성하 기자 2026. 2.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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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스터 지정·인프라 지원 속도전 본격화
전남·광주 확장 속 순천 RE100 산단 부상
용인 메가클러스터 전력 갈등 변수로 부각
제품 로드맵 공백에 '간판형 클러스터' 우려
RE100 반도체 국가산단 유치 후보지 안내도 /순천시

반도체 특별법 통과 이후 국가 차원의 클러스터 지정과 인프라 지원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순천을 포함한 남부권까지 유치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기반 시설 지원 체계가 제도적으로 마련되면서 입지 논쟁은 확대됐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제품 전략은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지자체는 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국가산단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기존 수도권 중심이던 반도체 산업 지형을 전남·광주 등 남부권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으며 전남 순천시는 'RE100 반도체 국가산단'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남부권 확장 움직임···"전력·용수·RE100" 전면 부상

전남·광주가 반도체 허브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전력과 용수 여건에서 수도권과 다른 구조적 조건이 있다. 반도체 팹 6기를 가동하려면 하루 107만 톤의 용수와 9.3GW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현재 수도권의 용수 여유분은 0.9%에 불과하고 전력 공급 역시 송전망 포화로 한계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 100(RE100) 요구까지 고려하면 수도권 입지는 기업 입장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전남 서부권은 하루 130만 톤 이상의 용수 공급이 가능하고 전남·광주가 공동 추진 중인 태양광·해상풍력 확충을 통해 17.5GW 규모의 재생에너지 기반을 갖출 수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요구하는 '전력·용수·RE100' 3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조건으로 평가된다.
순천시청 청사 전경 /순천시

순천시는 해룡면 일원에 396만6942㎡ 규모의 산업용지와 79만3388㎡의 예비산업용지를 확보한 상태다. 주암댐·상사댐 용수와 해상풍력·태양광 기반 재생에너지 공급 체계를 활용해 RE100 실현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광양(제철)·여수(석유화학) 국가산단과의 인접성도 강점으로 제시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남해화학 등 대규모 산업시설이 인근에 위치해 있어 산업용 전력망과 기초 화학 인프라가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안정적인 전력 수요와 특수가스·화학 소재 기반을 고려하면 기존 중후장대 산업 인프라의 집적은 기초 여건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순천시는 국가산단 유치 시 4만 명 고용 창출과 15만 명 인구 유입을 통해 '100만 광역생활권' 형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RE100 반도체 국가산단 유치는 전남·광주 행정 통합을 넘어 산업과 경제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는 선택"이라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960조 용인 메가클러스터, 전력 15GW '갈등 변수'

이 같은 지역 확장 논의는 960조원이 투입되는 용인 메가클러스터를 둘러싼 전력·송전망 수용성 논란과 맞물려 있다. 경기도 용인에는 SK하이닉스가 600조원을 투자하는 원삼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와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다. 일반산단은 공정률 70%를 넘겼고 국가산단 역시 토지보상 절차에 들어가는 등 사업은 본궤도에 오른 상태다.

문제는 전력이다. 두 산단에 필요한 전력은 약 15GW 규모로 추산된다. 수도권 자체 발전 여건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전력 수송을 위해 345㎸급 송전선로 확충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경관 훼손과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비수도권 식민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지역별 클러스터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지만 논의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입지 조건에 머물러 있다. 이에 산업계 안팎에서는 정작 핵심인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논의가 상대적으로 뒷순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프라 경쟁은 가열,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후순위
삼성전자의 DDR5 D램(위쪽)과 SK하이닉스의 LPDDR6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재 다수의 지역 클러스터 구상은 '전력 충분' '용수 확보' '재생에너지 기반'이라는 인프라 논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어떤 제품군을 전략 품목으로 설정할지 △메모리 중심 구조를 유지할지, 시스템반도체·AI 가속기로 확장할지 △첨단 패키징·후공정 특화 전략을 취할지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구체적 로드맵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AI·데이터센터 확산 국면에서 핵심 축으로 거론되는 D램, MPU, TPU 등 주요 품목은 공정 구조와 생태계, 수요처가 서로 다르다. D램은 이미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수도권·충청 벨트에 집적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초대형 자본 투입과 수율 관리, 공정 노하우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반면 MPU·TPU 등 고성능 연산칩은 설계(팹리스) 역량과 소프트웨어, IP, 전자설계자동화(EDA),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역량이 결합해야 한다. 글로벌 고객 네트워크 역시 핵심 변수다. 단순히 전력과 용수를 확보한다고 해서 '핵심 칩 생산 거점'이 자동으로 형성되는 구조는 아니라는 의미다.

특별법은 '속도 장치'···전략 부재 땐 간판형 클러스터 우려

업계에서는 특별법이 클러스터 조성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가깝다고 본다. 인프라 지원과 예타 특례는 속도를 높이는 수단이지만 어떤 칩을 전략 품목으로 설정할지에 대한 산업 전략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인프라 중심 유치 경쟁이 과열될 경우 앵커 기업과 명확한 제품 포트폴리오 없이 산업단지 조성부터 앞서는 '간판형 클러스터'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공정·후공정·소부장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경쟁력이 형성되는 구조다.

D램·MPU·TPU 등 전략 품목에 대한 국가 차원의 선택과 집중, 장기 수요 전망에 기반한 단계별 투자 로드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특별법 이후의 클러스터 정책은 입지 경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 RE100 =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

☞ MPU(Micro Processing Unit) =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는 연산칩으로 서버·데이터센터 핵심 부품.

☞ TPU(Tensor Processing Unit) =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가속기 칩으로 대규모 AI 학습·추론에 사용된다.

☞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 반도체 설계를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 체계.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