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에너지 17만년 분? 천연수소의 진실[천조국 리포트]

염현석 기자 2026. 2. 20. 06: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천연수소 잠재력, 누적 석유 채굴량 30배
미국, 채굴보다 앞서 천연수소 '잠재지 지도·탐사 프레임' 구축
"표준화된 탐사 기준 없이는 천연수소도 자원이 될 수 없다"

(뉴욕=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수소는 깨끗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로 주목받아 왔다. 단위 무게당 에너지가 크고,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대신 물만 남긴다. 여기에 전기를 써서 물을 분해하거나, 천연가스를 개질하는 방식에 따라 수소는 여러 형태로 생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수소에는 늘 ‘색깔’이 붙는다.

그린, 블루, 핑크. 수소의 색깔은 친환경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느냐의 구분이다. 그런데 최근 이 색깔 지도 바깥에서 전혀 다른 수소가 다시 등장했다. 만들지 않아도 되는 수소,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수소다. 이른바 화이트 수소, 즉 천연수소다. 수소가 ‘만드는 에너지’에서 ‘존재하는 자원’의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 가능성을 끌어올린 건 기술이 아니라 숫자다. 옥스퍼드대는 지구 대륙 지각이 지난 10억 년 동안 생성한 수소의 잠재량이 인류 에너지 소비 기준 최소 17만 년을 충당할 규모라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전 지구 모델링에서 자연수소의 잠재량을 약 6.2조 톤으로 제시했다. 이는 확정 매장량은 아니지만,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캐낸 석유의 누적 생산 질량(약 0.2조 톤)의 약 30배에 해당한다.

◆미국은 숫자에 반응했고, 중국은 땅을 팠다
미국이 천연수소에 반응한 이유는 단순하다. ‘청정성’이 아니라 규모다. 옥스퍼드대가 제시한 ‘인류 에너지 17만 년 분’, 그리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가 계산한 ‘6.2조 톤’이라는 숫자는 천연수소를 실험적 가설에서 자원 논의의 테이블로 끌어올렸다. 미국은 이 숫자를 “지금 써야 할 에너지”가 아니라, “계산해볼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읽었다.

미국의 첫 반응이 시추가 아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천연수소를 곧바로 개발 대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전 지구 지각을 대상으로 한 모델링과 지도를 먼저 내놨다.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단정하기보다, 어떤 지질 조건에서 축적될 가능성이 높은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에게 중요한 건 생산량이 아니라, 확률이었다.

이 접근은 미국 자원 전략의 전형이다. 셰일 혁명도 처음엔 매장량이 아니라, “어디에서 성공 확률이 높은가”를 수치화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희토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자원을 직접 캐는 국가라기보다, 자원이 ‘자원으로 인정받는 기준’을 만드는 국가에 가깝다. 천연수소도 같은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중국은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수소 소비국이다. 정유·화학·비료·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에서 수소는 미래 연료가 아니라 현재 원료다. 그래서 중국의 질문은 단순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언제, 얼마나, 얼마에 쓸 수 있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중국은 모델보다 시추를 택했다.

내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천연수소 탐사는 상업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목적은 자국 데이터 확보다. 미국이 가능성을 확률로 계산하는 동안, 중국은 현장에서 실물 숫자를 확인하려 한다. 미국은 기준을 만들고, 중국은 개발 가능성을 직접 검증한다. 이 차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천연수소가 산업이 되려면 넘어야 할 문턱
천연수소가 석유나 LNG처럼 산업 자원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탐사 기준이다. 어디서 성공 확률이 높은지에 대한 공통 기준이 없으면 대규모 자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천연수소가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사례는 있었지만, 재현 가능한 기준은 없었다.

두 번째 조건은 지속 가능한 생산성이다. 한 번 수소가 검출되는 것과,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생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천연수소가 ‘채굴형 에너지’로 인정받으려면 유량, 압력, 성분의 장기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지금 단계의 천연수소는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 지속성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세 번째는 인프라 적합성이다. 수소는 저장과 운송이 까다로운 에너지다. 아무리 큰 저류층이 있어도 수요지와 멀다면 경제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석유와 LNG가 자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매장량이 아니라, 운송·저장·정제·소비까지 이어지는 체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조건은 산업 수요와의 결합이다. 천연수소의 첫 시장은 발전이 아니라 산업일 가능성이 높다. 정유·화학·비료·철강처럼 이미 수소를 쓰는 산업에서 비용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원’이 된다. 결국 천연수소가 산업으로 가는 길은, 지질이 아니라 표준과 수요가 여는 길이다.

천연수소의 가능성이 높은 곳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철이 풍부한 암석과 지하수가 반응해 수소가 생성되고, 이 수소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불투수층이 덮는 지질 환경이다. 오만의 오피올라이트, 미국 중부 대륙열곡, 호주 남호주 지역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같다. 공통점은 ‘발견’이 아니라 축적과 지속성의 가능성이다. 미국이 특정 지역을 최대 매장지로 단정하지 않고, 조건과 성공 확률을 먼저 따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천연수소는 현실적인 ‘깨끗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조건부 가능이다. 천연수소는 전력과 전해조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출 여지가 있지만, 장기간 안정 생산이 가능한지, 산업 수요지와 얼마나 가까운지, 기존 인프라에 얼마나 쉽게 연결되는지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환경성이 아니라 재현성·연결성·단가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된다면 수소는 ‘만드는 에너지’에서 '캐는 자원'으로 영역이 넓어질 것이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