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두려운 당신에게②

김지은 기자 2026. 2. 20. 05:4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보내는 <우먼센스> 편집팀의 응원 메시지.

[우먼센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맞는 3월은 '시작'이라는 말과 닮아 있습니다. 지난 두 달은 어떠셨나요. 특별한 성과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조용히 버텨낸 시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진짜 2026년은 어쩌면 지금부터일지 모릅니다. 서두르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는 태도.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일.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There's no hurry.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서두를 필요 없어. 우리에겐 세상의 모든 시간이 있어."

-영화 <비포 선라이즈, 1995>

사진 영화 '비포선라이즈' 스틸 컷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시작조차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는 요즘, 이 문장은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한다.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순간을 음미하는 것 자체가 진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늘 조급하다. 빠르게 시작하고, 빠르게 결과를 내고, 빠르게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인 제시와 셀린느는 되묻는다. 정말 중요한 건 속도일까, 아니면 그 순간을 얼마나 깊이 느끼느냐 일까.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은 그저 게으른 변명이 아니다. 조급함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다. 시작이 늦어도 괜찮다는 위로이자, 과정을 즐길 수 있는 허락.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망설이는 것도, 무조건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도 아닌, 내 속도로 걷기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작은 위로다.

이 문장이 주는 진짜 메시지는 '시작을 미루지 말라'가 아닌 '시작은 이미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 아닐까. 천천히 걷더라도, 지금 여기서 발을 내딛는다면 그게 바로 지금 나의 가장 아름다운 출발일 테니까. 에디터 이설희

"나는 증명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다. 그냥 골프가 그리웠다"

- 앤서니 킴(Anthony Kim)

@anthonykimofficial 

한때 골프계의 슈퍼 루키로 불렸던 앤서니 킴(Anthony Kim). PGA 투어 3승, 라이더컵 영웅. 거침없는 스윙과 도발적인 세리머니로 '골프계의 록스타'라 불리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상과 알코올·약물 문제, 그리고 긴 공백. 사람들은 그를 '끝난 선수'로 정리했다. 스포츠는 잔인하다. 멈춘 시간은 곧 잊힌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왔다. 40대를 넘긴 나이, 과거의 기록도 이미지도 체력도 내려놓은 채 다시 출발선에 섰다. 16년 만의 우승. 한 시즌의 공백이 아니라, 한 세대를 건너뛴 시간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증명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다. 그냥 다시, 골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골프는 결국 멘탈 게임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그는 최근 SNS를 통해 전성기 시절, 대회 중에도 술과 약물에 의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마지막 퍼트를 밀어 넣는 순간, 우리가 본 것은 성적이 아니라 한 인간의 복귀였다.

우리는 시작을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시작은 '다시'에서 온다. 실패 이후의 시작. 낙인 이후의 시작. 자존심이 부서진 뒤의 시작. 그의 복귀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무너졌고, 멈췄고, 의심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의 나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와 싸울 뿐이다." 다시 선다는 건,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끌어안는 일이다. 무너졌던 자리에서, 가장 단단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아니면 말고"

- 박찬욱 <박찬욱의 오마주>

사진 제공 CJ ENM

박찬욱 감독은 딸의 초등학교 1학년 가훈 숙제 때문에 며칠 밤을 뒤척였습니다. 처음엔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으나, 어느 잡지에서 본 학교 급훈을 표절할 수는 없었기에 고민 끝에 백지에 "아니면 말고"라고 적었습니다. 감독은 딸에게 "일단 무엇이든 멋대로 저질러보고, 분위기가 썰렁해지면 그때 쿨하게 이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라 설명했고, 아이는 이 자유분방한 제안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가훈이 어디 있느냐"며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했죠. 이에 감독은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태도는 오만하며,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고 답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기보다 툭툭 털어버리는 '체념의 사상'이야말로 경쟁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참패했을 때도 스스로 이 말을 뇌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시작을 망설이는 이유는 실패 뒤에 찾아올 자괴감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찬욱의 "아니면 말고"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시작할 용기를 줍니다. 이는 단순히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게 만드는 면죄부와 같습니다. 완벽을 기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더 과감한 시도가 가능해지며, 그러한 배짱이 있었기에 흥행 실패를 딛고 탄생한 <올드보이> 같은 걸작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태현 기자

"주인공은 따로 없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 하나뿐이야.

네가 시작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

-이동건 <유미의 세포들>

사진 제공 스튜디오N

K장녀의 주특기는 주변 사람들의 기운을 살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뼛속 깊이 K장녀 DNA가 있는 저는 "좋은 게 좋은 거지"란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저를 변화시킨 건 에디터라는 직업입니다. 협업이 일상인 에디터의 업무는 현장의 디렉터인 제가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배려한다고 타인의 의견만 기다리는 것이 민폐일수도 있겠구나. 내 인생의 디렉터는 내 자신입니다. 대신 결정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내 인생인데 뭐 어때요? 김지은 기자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이어령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사진 김정선

방송인 김나영의 말처럼 육아는 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이란 걸 확인하게 합니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끝을 내보이고, 잠든 아이를 보며 "내가 왜 그랬지?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를 반복하곤 합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의 머리말을 볼 때마다 이어령 전 장관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딸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 먼 옛날을 떠올리며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지…. 그 깊은 후회와 그리움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야근으로 집에 늦게 가는 엄마, 화내는 엄마가 되고 후회로 범벅된 채 다짐합니다. 내일은 상냥한 엄마, 딸과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되자고요. 오늘의 부족한 모습은 잊고, 내일은 다시 괜찮은 엄마의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Start where you are. Use what you have. Do what you can."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하세요. 가진 것을 활용하세요.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미국 테니스 선수, 아서 애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습관처럼 부족함을 먼저 센다. 돈이 더 필요하고, 시간이 더 있어야 하며, 조건이 더 갖춰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프로 테니스 선수 아서 애쉬는 되묻는다.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 따로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출발선일이지 않을까?'라고.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건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이자, 기다림을 끝내는 선언이다. 가진 게 부족해도, 여건이 불리해도,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 그 작은 실행이 쌓여 결국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애쉬는 윔블던, US 오픈, 호주 오픈 단식을 모두 제패하며 삶으로 증명했다.

시작을 미루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회피다. 이 문장은 그 회피를 깨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가장 위대한 시작은 언제나 불완전한 지금, 여기에서 출발하니까. 에디터 이설희

"Just Do It"

- Nike

사진 나이키

1977년 유타 주 사형장. 총살형을 기다리던 연쇄살인범 게리 길모어가 집행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Let's do it"이었습니다. 11년 후, 광고인 댄 와이던은 이 세 단어를 살짝 비틀어 "Just Do It"이라는 나이키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말이 30년 넘게 전 세계인을 운동화 끈을 묶게 만든 겁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나이키의 미국 내 점유율은 10년 만에 18%에서 43%로 치솟았고, 매출은 8억 달러에서 92억 달러로 10배 이상 뛰었습니다. 첫 광고에 등장한 건 슈퍼스타가 아니라 80대 노인이었습니다. 추운 날엔 로커에 틀니를 두고 온다며 웃는 노인이 새벽 조깅을 하는 모습. 이 광고는 묻지 않았습니다. "준비됐어?" 대신 밀어붙였습니다. "그냥 해."

지금 시작을 미루는 우리 독자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준비가 아닙니다. 준비를 멈추고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시작하자"고 말한 사형수의 말이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당신의 서툰 첫 발도 뭔가를 만들어낼 겁니다. Just Do It. 김태현 기자

"시작은 모르는데 어느새 내가 거기 들어가 있었고,

어느새 살아가고 있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사진 김영하 인스타그램

시작을 미루는 사람들은 '완벽한 첫 단추'를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보면 대부분의 일은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 모르게 시작된다. 완벽한 출발선을 그리지 않아도, 삶은 언제나 이어지고 있다는 위로를 안겨주는 문장. 정효림 기자

"We are so bound by time, by its order.

But now I'm not so sure I believe in beginnings and endings.

There are days that define your story beyond your life."

"우리는 시간과 그 순서에 묶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시작과 끝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삶을 넘어, 이야기를 완성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영화 <컨택트>

사진 영화 '컨택트' 스틸 컷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찾아온 외계 생명체와 대화를 나누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들의 원형 문자를 해독하던 중,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줄로 이어진 타임라인이 아닌 동시에 펼쳐지는 순간들로 보이기 시작한 것. 그녀는 앞으로 만날 한 남자와의 사랑을, 그리고 태어날 딸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날 운명까지도 미리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는 시간과 그 순서에 묶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시작과 끝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삶을 넘어, 이야기를 완성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루이스의 이 대사는 영화가 건네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다. 슬픈 결말을 알면서도 그 시작을 선택하는 이유는, 엔딩보다 그 안에서 빛나던 순간들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처럼 '좋은 결과'를 계산하며 시작을 망설인다. 하지만 영화는 되묻는다. 정말 중요한 건 어떻게 끝나느냐 일까, 아니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감정들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여전히 시작과 끝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을까.

영화를 본 직후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깨달았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채점되는 시험지가 아닌 옳든 틀리든 늦든 빠르든 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완성되는 서사라는 것을.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거짓 없이 답할 수 있다면, 올바른 시작이란 타이밍은 무의미한 것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평온을 선택하는 용기가 결국 가장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믿기로 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 여정 자체가 우리를 정의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에디터 이설희

"비행기는 이륙할 때 연료의 50%를 쓴다"
- 당신의 시작이 유독 힘겨운 과학적인 이유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항공 업계와 경영학계에는 "비행기는 이륙할 때 연료의 50%를 소모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수백 톤에 달하는 육중한 고철 덩어리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솟구치기 위해서는, 순항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압도적인 에너지를 초반에 몰아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고도에 올라 기류를 타기만 하면 적은 힘으로도 멀리 나아갈 수 있지만, 지면을 박차고 오르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엔진이 터져나갈 듯한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유독 진이 빠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결코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이륙 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즈니스와 창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 하나, 썸네일 하나, 혹은 첫 문장을 떼는 데 전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어야 비로소 타겟의 마음을 움직이고 목적지까지 순항할 동력을 얻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단순히 응원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에 가깝습니다. 처음이 가장 힘든 이유는 그만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 고통스러운 가속 구간만 버텨내면 그다음부터는 관성의 도움을 받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려는 당신의 엔진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드디어 지면을 떠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에너지를 쏟으십시오. 이륙의 끝에는 반드시 순항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김태현 기자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