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인’ 김혜순이 ‘작가의 윤리’를 말할 때 [.txt]
‘대신 말하기’ 넘어서는 ‘다시 쓰기’ 강조
모국어 이전 “유령의 목소리로 무대에”

시인 김혜순(71)의 새 책 제목은 ‘공중의 복화술’이다. 시집이 아니다. 시론집도 아니다. 이번 신작은 시화집(詩話集)에 빗대 ‘시론화집’으로 불러볼 만하다. 시학·시론에 관한 자기 해설, 비평, 생애 일화가, 정동 가득히, 점철한다.
‘공중의 복화술’에는 때때로 슬픔과 분노가 배 있다. 가장 고조한 대목으로부터 신작의 장르적 특성도 거듭 가늠된다. 고통을 겪고 생존한 이, 그리고 그 생존자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작가를 마주 세워 쓴 대목이다. 가까이는 창작의 도리와 재현의 윤리 사이 길항이 보이고, 멀리 당사자 문학의 가능성과 정치성에 관한 비평으로까지 나아간다.

“소설은 허구라는 기득권, 시는 암시라는 기득권. 작가가 생존자를 대신해 고백을 시작한다. 정의를 실현하고, 판사처럼 대신 처단해 주려고? 아니면 텍스트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려고? 인간의 존엄을 대신 실현해 주려고? 하다못해 생존자라는 당사자의 존엄을 대신 실현해 주려고? 작가에게는 사건의 생존자라는 소재가 눈앞에 있다. (…) 그다음 소재가 된 생존자가 작가의 작품이라는, 그것을 읽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어지는 시인의 말은 마치 상상 속 무대 위 본인이 선 것처럼 적나라하다.
“이제 생존자가 경험한 그 시간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날들의 천장들과 형광등, 모욕의 기둥과 굴욕의 벽은 작가의 가구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 작가의 침이 쩍쩍 달라붙는 목소리로 읽어주는 ‘사건’의 집에서 생존자는 이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제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 같다. (…) 연년세세토록 이 작가의 이 작품이 회자될 것이다. ‘사건’인 ‘나’는 이제 해골 없는 몸이 된 것인가? 이제 나에겐 이 작가가 절대 가져다 쓸 수 없는 디테일이 있었다고, 그 디테일에 이은 굴욕만이 내 것이라고 소리쳐 울어야 하는가.”(‘고백할 수 없는 고백’에서)
실제 김 시인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이번 신작을 압착한 글이라고도 할 ‘혀 없는 모국어’(Tongueless Mother Tongue) 속에서도 밝힌 시인의 1978~79년 출판사 시절 ‘사건’이다. “무색무취무명의 말단 편집사원”은 당시 출간 원고를 신군부 군인에게 가져가 검열받는 일을 도맡았다. 개중 대사가 모조리 지워진 희곡(‘개뿔’)이 구음만 비명처럼 새 나오는 무언극으로 공연되었고 시인은 2시간 내내 울었다. 어떤 번역자 정보를 캐내려는 경찰한테 뺨 일곱대를 맞기도 했다. 직후 편집자는 결근한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뺨 한대에 시 한편씩, 시 일곱편을 썼다.” 이들 시는 1988년 시집 ‘어느 별의 지옥’에 담겼고, 2017년 개정판을 통해 시와 시형식의 배경으로서의 사건 일단이 처음 ‘고백’됐다.
그사이의 일이다. 사건과 김 시인이 감행한 시의 형식은 한강(56) 작가의 2014년 소설 ‘소년이 온다’의 3장 ‘일곱개의 뺨’에 흡사 재현된다.
“누군가 뺨을 갈기고 가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왜 날마다 날씨가 흐린 것 같을까 이불 속에서 울먹거리는”, 그렇게 “누구도 모르게 쓴 시들을 문예지에 투고”하던 시인의 등단 시점도 1979년 겨울이었으니, “박정희가 죽기 전” 치른 두 사건은 이후 47년에 걸쳐 15종의 시집을 발표하고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 호명되는 어느 별 어느 시인의 원초적 외상과도 같다.
이 경험 이후 “분열된 자아를 가진 여자의 환유적 이미지”(2023년 ‘김혜순의 말’)가 자발하고, 시는 “언어화되어 본 적 없는 것,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하는 목소리”로 전개되어 간다. 김혜순을 양분하는 ‘시여자짐승사물하기’와 ‘죽음의 시학’의 정체일 터, 자신 안에 언어 없이 우글대는 여자짐승들의 고통과 죽음을 ‘몸뚱이의 내밀성’으로 감지할 때 ‘나’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선행된다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리얼리즘의 결핍을 꼬집던 이들에게 “죽음만이 리얼리즘”이라 언명하는 배경이겠다. 고통이 바로 시고, 시인이다. 이 지독한 말대로다.
“고통하는 내 몸은 시방 동물, 광물, 식물이다. (…) 그러면 나는 신에게 빈다. 내가 이 아픈 짐승을 떠나게 해달라고. (…) 그러다가도 고통이 옅어지면 이제 몸이라는 이 짐승이 달아날까 봐 두려워한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고백할 수 없는 고백’의 주제에 대한 응답으로 시인은 ‘대신 말하기’나 ‘흉내 내기’와 구별되는 “다시쓰기”를 강조한다. 방법론이자 결과일 것이다. “저 작가는 타인의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갈무리하려면 얼마만큼의 다시쓰기가 개입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나 한 걸까?” “여기에서 작가의 윤리가 시작되리라. 생존자는 작가에게 묻고 싶다. ‘작가여! 당신은 이 소설에서 얼마만큼 살아 있는가. 당신은 얼마만큼 생존자의 ‘생성’을 가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쓰기’의 의미가 가늠되거니와, 어떤 작가도 그 질문에서 열외시키지 않고 있다. 고백의 가능성, 언어의 전능성에 대한 의심만이 의심할 수 없는 작가의 요건인 셈이다.
지난 10년 부·모의 죽음, 딸과 함께 이국에서 겪은 혐오 폭력, 미투 문단, 달에 네차례 기절하는 취약하고 예민한 신체 등의 경험과 단상이 책엔 담겨 있다. 시인의 시 세계와 창작론을 관통한 방식이다. 인터뷰집 ‘김혜순의 말’(마음산책) 등과 포개지면서도 구별되길, 서문에서 밝혔듯 책은 특히 문학도, 나아가 ‘글의 길’이 두려운 이들에게 권하는 안내서로도 읽힌다. 2020~22년 문예지 ‘악스트’에 연재한 산문과 이후 글을 엮었다. 지난 10년 ‘죽음의 3부작’을 매듭짓던 때이므로, ‘죽음’에 결박된 시인이 이후의 시인을 부르는 주술 같기도 하다. 거듭 ‘다시쓰기’인 것이다.
“재현이 아닌 것, 상징도 아닌 것, 빈 공간에 쏟아지는 목소리인 것” “부재의 부름에 대해 ‘네 지금 가요’하는 대답으로서의 받아쓰기”를 위해 “모국어 흔들기. 나도 없고, 모국도 해체된 곳, 다만 내가 각각의 몸으로 매일매일 달아나기, 시끄러운 이별의 받아쓰기. 너희가 쓰라는 받아쓰기는 이제 졸업이야. 그건 모국어로 된 외국어야. 이제 허랑한 무대에 디죄즈(여성 낭독자를 뜻하는 영어)의 유령인 여자가 다시 올라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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