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의 색깔만 남는다면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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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에 광장의 시간을 거치면서 간절히 바랐던 것은 일상을 되찾는 거였다.
길었던 그 겨울은 일상의 평화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차분하게 새해를 맞을 여유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 것인지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순순히 따르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주인공과 친구는 갈색 고양이와 갈색 개를 키우고, 갈색 커피를 마시고 '갈색 신문'을 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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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에 광장의 시간을 거치면서 간절히 바랐던 것은 일상을 되찾는 거였다.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떡볶이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반짝이는 기분으로 집 안팎을 장식하고 그렇게 꾸민 집에 그저 죄책감 없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랐다. 길었던 그 겨울은 일상의 평화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차분하게 새해를 맞을 여유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 것인지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온 겨울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갈색 아침’을 읽는다. 국가 권력의 횡포는 전쟁 같은 방식뿐 아니라 일상을 조금씩 부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며, 그런 불의에 침묵한다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갈색이 아닌 고양이는 없애야 한다’는 법이 시작이었다. 고양이가 너무 불어났는데, 실험해 보니 갈색 고양이가 가장 덜 먹고 새끼도 조금 낳는다나? 그 법은 곧 갈색 개만 살려 둬야 한다는 법으로 확대된다. 주인공은 또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남들이 모두 그 법을 따르자 묵묵히 그 법을 따른다. 기르던 고양이를 없앤다. 친구는 키우던 개를 안락사시킨다. 이 법을 비판했던 ‘거리 일보’는 폐간된다.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순순히 따르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주인공과 친구는 갈색 고양이와 갈색 개를 키우고, 갈색 커피를 마시고 ‘갈색 신문’을 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경마에서 갈색 말에 돈을 걸어 이기자 갈색이 좋은 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친구가 잡혀간다. 이제는 예전에 단 한 번이라도 갈색이 아닌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면 잡혀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온통 갈색인 세상에서 주인공은 불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처음 그들이 왔을 때’(1946)가 생각나는 그림책이다. 나치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웃을 잡아갈 때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했더니, 결국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를 위해 나서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 독일에서 갈색은 나치 친위대 제복의 상징색이기에 접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책은 실제 2002년 프랑스 대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극우파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을 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이 책을 소개했고, ‘갈색 아침 현상’이라는 이름으로 큰 반향을 얻어 결국 그 후보는 낙마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거듭 목숨을 잃었던 미국 미네소타에서 이민세관단속국 요원의 총격으로 백인 시민권자가 거듭 숨졌다.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은 갈색 정부에 가깝다. 원래 좀 막무가내인 사람이라며 보아 넘길 순 없다. 위로가 필요한 불운과 연대가 필요한 불의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하듯 개인의 기행과 권력자의 불의 역시 단호히 구별되어야 한다.
일상의 평화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임을 실감한다. 계엄이 저지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앞에 펼쳐졌을지도 모를 갈색 세상을 생각한다. 무지개색 일상을 위해 추운 거리에 나섰던 은색 시민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흙빛 마음으로 세상의 색을 위해 싸우고 있을 세계 곳곳의 시민들에게 연대를 표한다.
이진민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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