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째 청량리 그 자리서 밥 나누는 최일도 목사 "다툼 대신 나눔, 상극 대신 상생"

인현우 2026. 2. 20.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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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종교] 다일공동체, '밥퍼' 현장 운영
매 끼니 수도권 각지서 노인 500명씩 모여
'혐오시설' 논란 속 구청과 소송전 벌이지만
"민관이 함께 어르신들의 외로움 해결해야"
편집자주
아는 만큼 보이는 종교의 세계. 한국일보 종교기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생생한 종교 현장과 종교인을 찾아 종교의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를 비롯한 밥퍼나눔운동본부 직원들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은 어르신들을 위해 배식에 앞서 큰절을 하고 있다. 류효진 선임기자

설을 앞둔 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근처 굴다리 옆으로 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1층에서 이뤄지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서다. 오전 11시부터 무료 급식이 시작되는데, 이미 자리가 없어 1층 앞마당에는 맛집처럼 대기열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루 500명, 어르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식사가 무료라서만이 아니다. 끈끈한 인연이 있다. '밥퍼 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다일공동체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감사하니 행복해요"를 외치자 어르신들도 '감사 박수'로 화답했다. 감동도 있다. 22년 전 신혼여행을 계기로 결혼기념일마다 밥퍼를 찾는 김종운·이명신 부부는 이날 장성한 자녀 셋과 함께 봉사에 동참했다. 김종운씨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식들이 함께 온 것은 저희가 데려온 것이 아니라 밥퍼에서 환대해 주시고 어르신들도 너무 잘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일도 목사가 밥퍼나눔운동본부 1층 무료급식 식당에 붙은 과거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최 목사는 1988년부터 청량리역 근처에서 노숙인과 무의탁 노인을 위해 밥을 나누는 공동체 활동을 이어 왔다. 류효진 선임기자

최일도 목사는 38년 전 청량리역 광장에서 쓰러진 노숙인에게 설렁탕을 대접한 것을 계기로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곤로와 냄비를 들고 라면을 끓여주며 노숙인을 도왔다. 그해 성탄절 굴다리 옆에서 노숙인 3명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던 최 목사는 지난해 같은 자리의 밥퍼나눔운동본부 앞 성탄절 예배 때 2,000여 명에게 식사와 점퍼 등 선물을 전했다.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원래 노숙인을 위한 급식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수도권의 홀로 사는 노인들이 모이면서 지금은 '노인 사랑방'으로 변했다. 하루에 밥퍼를 찾는 500명 중 동대문구 거주자는 150명 정도. 나머지는 서울역과 영등포 등 서울 시내는 물론 인천, 경기, 멀게는 충남 천안시에서 온다. 굳이 청량리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배고픔보다는 외로움 때문이다. 오전에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밥퍼에서 점심을 먹은 후 경동시장 등 주변을 둘러보다 귀가하면 하루를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다. 최 목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런 노인들을 만나는 최 목사가 걱정하는 건 '고독사'다. 핵가족화가 심해지면서 나이 들어 자녀와 단절되는 노인이 늘어나고, 찾는 이 없이 살다 갑자기 죽음을 맞는다. "해마다 4,000명 가까운 분들이 홀로 죽는다고 합니다. 아무도 슬퍼해주는 이 없이 죽어가는 현실이 슬픕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국에서 3,924명이 홀로 숨졌고, 그중 60대 남성이 가장 많았다. 최 목사는 '고독부'를 세운 영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들어 "헌법이 정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정부가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에 모이고 있는 어르신들이 갈 수 있는 장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류효진 선임기자

밥퍼나눔운동본부의 활동은 한국 개신교에서도 이정표라 할 만하다. 교회 사역으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 밥퍼가 성공 사례로 뜨면서 지금은 여러 지역 교회에서 무료급식소나 비슷한 취지의 지원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 목사는 "밥퍼는 기독교의 지역사회를 향한 섬김과 나눔이 하나의 문화가 되는 시발점이었다"면서 "가난한 사람,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가게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 목사는 교회를 키우는 것보다 나눔을 앞세웠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리라는 강한 믿음에 따른 것이다. 2010년엔 담임목사를 맡던 다일교회에서 정년을 11년 당겨 일찍 은퇴를 선언하고 다일공동체 봉사활동과 해외 빈민 선교에 전념하기로 했다. 애초부터 밥퍼도 개신교만의 단체로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봉사자 중 신도 비중이 80%였지만, 지금은 거꾸로 비신도 비중이 80%다.

네팔, 캄보디아, 탄자니아 등에도 다일공동체가 있다. 이들 나라는 빈곤 아동 문제가 심각하기에 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호프 스쿨'을 운영해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의 학업 과정을 돕는다. 세 나라 모두 기독교세가 강한 국가는 아니지만 신뢰를 받고 있다. 최 목사는 "네팔에선 정부가 대지진 이후 고아들을 위해 새로 시설을 내 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소개했다. 네팔에만 세 곳에 다일공동체 시설이 있다.

최 목사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신뢰를 잃어가는 상황에 우려도 내비쳤다. "지금은 대형 교회에서 설교할 때 가난한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쪼개지며 극단적 증오를 앞세운 교회가 세력을 키우는 것도 걱정거리다. 최 목사는 "오늘날 한국의 상극 세상은 도대체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밥퍼와 같은 사회봉사야말로 진보와 보수의 '상생'을 이룰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중도와 통합, 중용을 생각하는 봉사 자리를 만들자, 그러면 양쪽(진보·보수 교회)에서 와서 서로 보고 놀랍니다. 그렇게 만나고 나면 우리가 또 한쪽으로 치우쳤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14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은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밥퍼 건물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류효진 선임기자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을 무허가로 보고 철거 명령을 내린 동대문구청과 햇수로 4년째 행정소송을 치르고 있는 다일복지재단은 지난해 12월 2심에서도 승소했다. 다만 구청이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재판은 대법원으로 이어지게 됐다. 최근 청량리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 일부도 밥퍼를 '혐오시설'로 간주하며 민원을 지속 제기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최 목사는 "아파트 주민 중에도 찾아오셔서 봉사할 곳이 가까이 있어 다행이라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2023년 6개월간 진행한 밥퍼 철거 반대 서명운동엔 동대문구민 8,000여 명이 동참했다.

최 목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멀리, 안 보이는 곳에 갔으면 한다는 발상이 옳지 않다"면서 "이곳처럼 전철이 닿는 곳이야말로 어르신을 위한 복지시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노인들이 계속 '밥퍼'를 찾아올 수 있도록 방안을 찾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정부와 계속 협력할 방법을 찾을 겁니다. 어떻게든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관과 민이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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