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타냐의 일기

허행윤 기자 2026. 2.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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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잔혹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가수가 꿈이었던 레닌그라드의 열한 살 소녀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다.

타냐의 일기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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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잔혹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피붙이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떴다. 그들이 숨질 때마다 일기에 또박또박 썼다. “1941년 12월28일 아침 제냐 언니가 죽었다. 1942년 1월25일 낮 3시 할머니가 죽었다.” 그 일기는 삼촌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다가 이렇게 끝난다. “마침내 엄마도 죽었다. 모두 죽었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가수가 꿈이었던 레닌그라드의 열한 살 소녀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다. 장소는 옛 소련의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이 도시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6월22일부터 시작된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대침공 작전으로 허를 찔린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독일군은 포로로 잡은 민간인 아녀자도 총알받이로 앞세웠다. 그렇게 보고를 받은 소련군 수뇌부는 상관하지 말고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의 광기(狂氣)가 섬뜩했다.

역사상 가장 지루했던 소모전 끝에 독일군은 포위작전에 들어갔다. 외부로부터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채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871일간 400만명 이상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타냐는 1942년 8월 후방으로 옮겨졌고 1944년 5월 병원으로 이송돼 장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떴다.

타냐의 일기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안네는 나치의 감시를 피해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인 작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발각돼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 그때가 열세 살이었다.

이 소녀는 다락방의 고립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역사를 통틀어 큰 고통과 상실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준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전쟁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건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 버리는 일이다.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는 건 개인을 말살하는 일이다.”

전쟁의 끔찍함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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