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넘어지려고 양손으로 버텼다… 김길리의 ‘네 발 코너링’

“양손으로 빙판을 짚으며, 거의 네 발로 뛰듯 달렸어요.” 김길리(22·성남시청)의 집념이 금빛 질주를 완성했다.
19일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길리는 한 바퀴 반을 남기고 이탈리아의 레전드 아리아나 폰타나를 제치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마지막 코너에서는 양손을 모두 빙판에 대고 내달렸다. 균형을 잃기 쉬운 곡선 구간에서, 온몸을 동원해 넘어지지 않겠다는 투혼의 몸짓이었다. 그는 “그저 뚫고 나갈 ‘길’이 보여 앞만 보고 달렸다”며 “이후엔 마지막까지 내 자리(선두)를 지키겠다는 각오뿐이었다”고 말했다.
빙판 위에서는 날카로운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지만, 역주를 마친 뒤에는 대표팀 막내다운 풋풋함을 드러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언니들한테 빨리 가서 안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웃었다.
쇼트트랙과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어린 시절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김길리는 태권도, 축구, 발레 등 다양한 종목을 즐겼고, ‘피겨 여왕’ 김연아의 경기를 보며 피겨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곱 살 딸을 여름 특강으로 등록한 종목은 피겨가 아닌 쇼트트랙이었다. 피겨 수업이 없어 대신 선택한 종목이었지만, 빠른 속도가 주는 짜릿함에 매료된 김길리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는 열여섯이던 2020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성인 무대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 2023-2024시즌 월드컵 종합 랭킹 1위를 차지했다. 2024 로테르담 세계선수권에서는 생애 첫 금메달(1500m)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계주 악몽’이 찾아왔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선두를 달리던 그는 인코스로 파고든 중국 선수와 충돌해 넘어졌고, 한국은 4위에 머물렀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될 만큼 눈물을 쏟은 김길리는 “내가 넘어지는 바람에 팀이 함께 메달을 나누지 못했다”며 자책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시련은 이어졌다. 지난 10일 혼성 2000m 계주 준결선에서 미끄러진 미국 선수와 엉켜 넘어지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옆구리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김길리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는 “아시안게임 때부터 계주에서 넘어지다 보니 걱정과 부담이 컸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언니들을 믿고, 나 자신을 믿으며 과감하게 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계주에선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면, 압박감을 떨쳐내고 그간 실수를 만회한 이날은 기쁨 어린 눈물을 떨궜다.
김길리의 별명은 ‘람보르길리’(람보르기니+길리)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치고 나가는 모습을 이탈리아 스포츠카에 빗댄 표현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 역시 그의 별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이 별명을 얻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남들만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 12시간 넘게 훈련하고, 대회를 마친 뒤에는 자신의 경기 영상을 반복해 보며 경기 운영을 되짚었다.
스케이트날을 황금색으로 바꾸고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선 그는 이미 메달 두 개를 목에 걸었다. 16일 여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딴 그는 사흘 만에 3000m 계주 우승을 이끌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서 첫 멀티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너무 너무 영광”이라며 환하게 웃은 김길리는 21일 1500m에서 세 번째 메달 사냥에 나선다. 그는 “계주 금메달의 흐름을 잘 이어가 멋진 경기를 펼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文 전 대통령 살해 협박글 올린 30대, 항소심서 형량 가중
- 아파트 가격 뛰자 분양가도 점프... 노량진 30억원·장위 20억원 눈앞
- 사흘간 계좌 32개 만들어 1억2000만원 가로채...금감원, 자유적금계좌 악용 사기 주의보
- 4월 출생아 수 증가율 동월 기준 역대 최대...출생아 수 22개월 연속 증가
- 유튜브에서 판치는 불법 코인업자…금융위, “‘고수익 보장’, ‘글로벌 상장’ 현혹 문구 유
- “스팸 아닙니다”…침수 지역에 주차된 차주에 보험사·경찰이 연락해준다
- 오세훈 張 거취 “서두르면 부작용…중진들, 책임있게 역할해야”
- 이란, 중·러 기술 받아 ‘해파리 드론’ 편대 운용하나
- 호남 반도체 투자설에…경기남부·광주광역시 부동산 모두 촉각
- 이정후, 애슬레틱스전 첫 타석부터 시즌 5호 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