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경제학] 1. 남동산단-숫자보다 먼저 늙는 현장

김원진 기자 2026. 2.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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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판 위에 남은 사람들

목재 공장에서 일하는 종철씨
30년동안 지게차 모는 기장으로 근무
1980년대 300곳 성황…현재는 30곳뿐

정년 넘긴 중장년 노동자 병수씨
목재기업 사이 자동차 부품공장
정년 퇴직 이후 다시 돌아온 현장

젊은이 없는 공장서 근무하는 정석씨
군 전역 후부터 30년 일해온 산단맨
외국인 노동자로 빈자리 메워…한계

무엇이 사라지는가
가동률 하락폭 전국 최고…산단 경고등
목재·종이 6.2%·수출액도 67% 감소

블로그나 SNS에 소개된 적 없고, 포털 지도에도 뜨지 않는 식당들이 있다. 문 앞에는 그저 '식당', '매점', '아침 식사 됩니다'라고 적힌 낡은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다. 오전 11시, 11시30분, 12시, 12시30분. 정해진 시간마다 주변 공장들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남동산단의 점심은 이렇게 반복된다.산단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을 사람을 찾은 지도 사흘째.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말을 건네면, 사람들은 식판을 후다닥 비우고 흩어진다. 기자는 공장가 식당에서 완벽하게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산단 상점가에서 '인천일보'라고 오바로크 친 작업복을 단돈 3만원에 사 입었다. 그제야 식당 안 시선이 조금 느슨해졌다.

▲장면 하나. "오늘 나를 잘 만났네"-종철씨 이야기

이종철(71·가명)씨는 이런 마음고생 끝에 처음 만난 물꼬였다. "오늘 나를 잘 만났네" 소고기뭇국에 한술 뜨며 종철씨가 이렇게 말해줬을 땐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날 정도였다.

종철씨는 식당과 붙은 목재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들어보니 '나무'와는 뗄 수 없는 삶이었다.

1999년 입사한 이 회사에서 지게차를 모는 '기장'으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일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농협에서 일하다가 동생 뒷바라지에 낯선 인천으로 왔다. 1980년 서구 가좌동에서 목재 업체 관리직으로 시작, 1990년대 전후로 남동산단이 외형을 갖추면서 목재 업체들 유입과 함께 그도 이곳으로 왔다.

그가 일하는 목재소는 원목을 제재하는 곳이다. 뉴질랜드와 독일 등지에서 배로 원목을 들여와 이를 재목(材木)으로 다듬는다.

그렇게 일하면서 동생은 동국대에 보내고 아이들도 건사시켰지만 목재업 자체는 200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더니, 이젠 생존을 걱정할 처지까지 내몰렸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북항이나 남동, 검단, 김포 등지에 목재 공장이 300개 정도는 있었다. 지금은 다 없어지고 30개가량만 남았다. 그나마도 일을 못 하는 데가 많다. 겨울에 물건을 해놓은 게 봄이면 다 나갔는데, 힘들 땐 봄까지도 안 나가더라"라며 "봄이면 날씨가 뜨거워지니 (물건에) 곰팡이가 슬고 시커메지는데, 그럼 엄청 가격을 다운시켜서 팔았다. 그런 걸 몇 년을 겪다 보니 이제는 애초에 물건을 쌓아놓지도 않는다. 사장도 힘이나 의욕이 안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몇 달 일하면 반까이(만회)되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손해가) 누적이다"라고 했다.

"예전에는 누군가 공장을 닫으면, 또 다른 사람이 그 공장을 사가지고 들어와 사업을 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기계들을 다 고철로 넘겨버리고 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종철씨와 대화는 한 개인의 언급을 넘어, 남동산단의 시간표를 거슬러 읽게 만든다. 한때 인천항만과 산업단지를 잇는 축이자 지역 제조업의 한 축이었던 목재산업은 이렇게 현장에서 먼저 식어갔고, 그 쇠퇴는 통계보다 빠르게 식판 옆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산업 내리막은 곧 일터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이주로 인천에 뿌리내린 중·장년 노동자의 노년을 압박한다. 남동산단의 활력 상실, 인천 산업 구조의 변화, 그리고 한 도시에서 늙어가는 노동자의 고단함이 한 식탁 위에서 포개진다. <식판 경제학>은 이처럼 개인의 서사에서 출발해, 산업과 도시가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식사를 마친 종철 씨는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아 자신이 모는 지게차로 향했다. 믹스커피 한 봉을 쏟아 넣고 앉아 포장지로 휘휘 저으며 찰나의 휴식을 즐겼다. 생각해 보면 공장들 사이엔 편의점도 귀한데 카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오면 8년째 취미로 부는 색소폰을 연주해 줄게"라며 헤어지는 종철씨 목소리 톤은 생업 얘기할 때보다 한층 높았다.

▲장면 둘. 정년즈음, 수많은 중·장년 노동자-병수씨 이야기

송도국제도시와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둔 남동산단 고잔동 골목에는 원래 목재기업들이 몰려 있다. 이 동네 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윤병수(65·가명)씨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 크게 보면 금형업 범주다.

정년을 훌쩍 넘긴 병수씨는 자신의 선택지가 마치 두 개뿐인 것처럼 말했다. "여기 와서 일하든지, 아니면 공원 가서 시간 보내든지."

병수씨 머리 위에는 작업장에서 묻어온 듯한 검은 먼지 조각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의 백발 때문에 더 잘 보였다. "가자마자 또 일해야 한다"며 식사 후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를 따라가며 조심스레 경기 이야기를 꺼냈다.

병수씨는 정년퇴직 후 과거 직장에 복귀한 케이스다. 예순이 넘어서도 일에서의 해방은 아직이지만 병수씨는 "일을 해야지. 할 수 있으면 하지 안 그럼 뭐하나"라고 했다.

"자동차 업계는 요새 일감 뽑아내고 있어서 일은 많은데, 단가가 너무 약해 그걸 맞추려니 힘들다"라는 말도 했다.

일감은 있어도, 남는 건 적다는 뜻.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아도 체감 경기는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장년 노동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배경에는 이처럼 얇아진 산업의 수익 구조가 깔려 있다. 신입을 뽑기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키우기도 어려워진 현장에서 기업들은 결국 이미 일을 아는 중·장년 인력을 더 낮은 비용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쪽을 택하고 있다.

병수씨는 남동산단 바로 옆 시흥 사람이다. 결혼하기 전 시절엔 부천 한 금형 관련 제조업체에서 10여년간 일을 했다. 그의 일생에 제조업이 큰 자리를 차지해 온 셈이다.

허기짐을 해결한 사람들이 다른 허기짐을 쫓아 공장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중엔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 병수씨는 "이 사람들은 전부 남의 나라 사람들이다. 러시아 쪽이구만. 위에 동네 애들이다"라고 알려줬다.

"쌍화탕이라도 한 병 들고 와 얘기를 청할 것을 그랬다"는 기자 말에 병수씨는 "괜찮아, 괜찮아"라며 공장 문을 열었다.

▲장면 셋. 나름 잘 돌아가도,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인-정석씨 이야기

김정석(56·가명)씨가 일하는 2차 가공 업체는 요즘 남동산단에서도 비교적 숨통이 트인 곳에 속한다. 반도체와 통신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을 다루는 업체로, 일감은 꾸준하다. "우리 쪽은 요즘도 일이 계속 들어온다"는 게 정석씨 설명이다. 산단 전체가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말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가 느끼는 '숨통'은 개인의 체감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반도체 업황이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대형 기업들이 이끄는 생산 흐름의 여파가 인천 산업단지까지 번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인천에 자리한 기업들은 이 흐름을 주도하기보다는, 이미 결정된 수요를 받아 처리하는 2차·3차 공정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반도체 산업의 기획과 투자, 기술 주도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경기도에 본거지를 둔 대기업들이 쥐고 있고, 인천은 그 아래에서 공정을 분담하는 하위 생태계로 연결돼 있다. 호황 온기는 닿지만,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패권은 여전히 인천 밖에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감이 유지되더라도 수익성과 고용의 질까지 함께 개선되기는 쉽지 않다.

정석씨는 군 전역 직후부터 30년 가까이 남동산단에서만 일해 온 이른바 '산단맨'이다. 스티로폼 제조업부터 래핑업, 도금까지 5~6개 업체를 옮겨 다니며 손에 익힌 공정만도 여럿이다. 현재 근무 중인 회사는 3인 체제의 소규모 업체로, 사장과 사장 아들, 그리고 정석씨가 함께 일한다. 사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금은 사실상 둘이서 공장을 지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정석씨 표정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일감은 이어지고 있어도 공장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사이 산단에서 젊은 사람을 거의 못 봤다"는 게 그의 말이다. 도금 단지에서 일하던 시절을 예로 들었다. "당시 산업기능요원 지원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기대했는데 결국 안 왔다. 환경이 더 나은 데로 간 거지 않겠냐"고 했다. 제조·용접 같은 업종은 본인 세대에겐 여전히 '철밥통'으로 불리지만, 청년층에게는 더 이상 선택지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서 쓸쓸함이 엿보였다.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하다. "단순 공정은 가능한데, 숙련이 필요한 곳은 늘 인력 걱정이 따라붙는다"며 "언어 문제도 있고, 가르쳐 놓으면 비자가 끝나 떠난다"고 했다.

정석씨는 공장으로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다 안 되는 건 아니다. 돌아가는 데는 돌아간다. 다만 앞으로 누가 이걸 이어갈지는 잘 모르겠다" 잘 되는 업종이 남아 있어도, 그다음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동산단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출근길 남동경찰서 앞 사거리 정체를 보면 그날 산단 분위기를 안다" 대화 중에 정석씨는 재밌는 나름의 경기 지표를 소개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로 출근하다 보니 차가 평소처럼 밀리면 공장들이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고, 덜 막히면 납품이나 가동이 줄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날 아침, 사거리는 예전만큼 막히지 않았다고 했다.

"아예 안 막히는 건 아니니까, 아직은 버티는 거지."

▲무엇이 먼저 사라질 것인가

종철씨가 말해준 '고철이 되는 기계들', 병수씨의 '정년 이후 복귀', 정석씨의 '아직은 버티는 거지'라는 말은 모두 다른 목소리처럼 들리지만, 한 방향을 가리킨다. 이 체감은 개인의 사정일까, 아니면 남동산단 전체의 흐름일까. 현장 언어가 과장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남동산단을 둘러싼 숫자를 다른 곳들과 비교하며 들춰봤다. 가동률과 고용, 업종별 증감, 수출 비중까지. 개인의 하루를 구조의 좌표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다.

남동산단 쇠락은 "경기가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더 빨리 꺾이고 있다는 신호들이 포착됐다.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입주 업체 1000곳 이상 국가산단을 놓고 보면, 최근 2년 새 가동률이 오른 단지가 대부분인데 남동만 유독 반대로 움직였다. 남동산단 가동률은 81.6%에서 73.9%로 7.7%p 급락했다. 같은 기간 주안(+11.8%p), 부평(+7.1%p), 시화MTV(+19.1%p) 같은 수도권 산단이 '회복' 쪽으로 기울 때, 남동은 홀로 후퇴 방향을 택한 셈이다.

현장 체감이 숫자로도 확인되는 대목은 고용에도 있다. 남동산단 고용인원은 8만4439명에서 8만1231명으로 3208명 감소(-3.8%)했다.

처절한 장면은 업종 내부에서 먼저 드러난다. 남동산단 '목재·종이' 업종은 2년 새 가동업체가 321개→301개(-6.2%)로 줄었고, 수출액은 300만달러→100만달러(-66.7%)로 3분의 1토막 났다. 산업이 식어가는 속도는 통계의 평균값보다, 업종별 '붕괴 지점'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곳 사람들 말과 수치들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 국내외 연구자와 정책 전문가, 현장 분석가 등 20여명을 직접 만나 교차 점검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남동을 포함한 인천 국가산단의 문제를 '일시적 경기 둔화'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 지연으로 진단했다. 영세 기업 비중이 높고 집적의 구심이 약해 혁신이 축적되지 못하며,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는 장기적으로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노동력 확대, 업종 고도화, 특화 산업 중심 재편 등이 해법으로 제시됐지만, 속도와 집중 없이는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했다. 전문가들 인터뷰는 기획 뒷부분에서 자세히 정리한다.

그러니까, 남동산단의 지금은 '회복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먼저 사라지고 무엇이 대신 들어설 것인가의 문제에 가까워 보였다. 고철이 되는 기계들, 정년 이후 다시 돌아온 노동자, "아직은 버티는 거지"라는 말은 그 전환의 시간을 버티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통계는 하강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 선 위에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는 식판들이 놓여 있다.

/글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그래픽 이연선 기자 yonsony@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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