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영남 산불 1년, 이재민 삶에서 주민 삶으로
지난해 3월 영남 초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한 농민에게 명절 안부를 물었더니 명절 따위 “없애삐마 속이 핀켔다(없애버리면 속이 편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8평 컨테이너 임시주택에 식구들이 모여 떡국 한 그릇 끓여 먹기도 심란한 마당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의례적인 인사조차 결례였다. 산불 직후에는 살았다는 안도감이라도 들었지만 지금은 더 막막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임시주택에서의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영농철까지 다가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피해 주민들이 시급한 문제로 꼽는 것은 주거안정이다. 극소수 주민들만 살 집을 마련했을 뿐, 4000여명의 주민들은 여전히 임시 주거시설에서 지낸다. 집이 다 타버리면 최대 1억2000만원의 지원금이 나온다지만 농촌에서도 이 돈으로 집을 짓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60대 이하 주민들은 이미 영농 자금이나 주택 신축 등으로 금융 대출을 꽉 들어차게 받아놓은 상태에서 복구의 가닥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팔순이 넘는 초고령 노인들은 형편도 어렵지만 여생을 가늠하면 주택 신축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어가는 마을에 훗날 홀로 남을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LH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임대아파트를 얻어 시내로 나간 사례는 매우 좋은 상황이지만 평생 살던 마을을 떠나 아파트 생활을 한다는 것도 누군가에겐 외롭고 어렵다. 함께 겪은 슬픔은 함께 이겨나가는 공동체적 대응이 재난 극복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이지만 좀체 지켜지기 어렵다. 더구나 남의 땅에 집을 지은 세입자와 귀농귀촌인, 소상공인들은 보상금이 600만원 정도에 그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는커녕 복구 의지마저도 확 꺾여버렸다.
이전의 재난보다는 증액된 보상금액이어도 복구비용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지역사회도 큰 부담을 떠안는다. 재정 상황이 빤한 지자체가 피해 복구에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문화 사업이나 지역 활성화 사업 등은 뒷전으로 밀린다. 일례로 청송군 같은 작은 고장은 복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15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 4억원이 넘는 연이자를 따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피해 주민은 누군가에게 계속 돈을 달라 떼를 쓰는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롭다. 국가가 재난을 입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국민의 헌법적 권리임에도 재난 이후에는 국민이 아니라 민원인의 삶이 되어버린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여야 대치 국면에서도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특별법’이 통과되어 피해 구제와 지원에 기준을 잡는 시행령이 1월29일 공포되었다. 산림 재난과 관련한 첫 특별법으로 그만큼 피해 범위가 넓고 엄중하기 때문이다.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주민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특별법의 내용이 포괄적이기도 하고, 시행령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종다양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마련해둔 수의 한 벌은 평범한 옷 한 벌이 아니지만 피해 산정 과정에서는 생필품 소실 정도일 뿐이고 증명할 방법도 난망하다. 여기에 경북도가 ‘산림경영특구’ 지정을 통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도 우려가 깊다. 그간 돈만 들이고 땅만 파헤쳐놓은 수많은 농산어촌 개발사업의 사례는 차고 넘쳐난다.
영남 산불 1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은 27명의 희생자들 1주기이기도 해 지역사회에 슬픔이 더욱 짙다. 영남 지역만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추념할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후재난의 성격을 띤 산불 피해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불 재난은 회복이 더딘 재난으로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1년이 살아남느라 애쓴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이재민의 삶에서 주민의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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