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단상] 짝퉁과 사이비

김진성 원불교 김해장유교당 교무 2026. 2. 19. 19:2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짝퉁'은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한자 뜻 그대로 "겉은 비슷해 보이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백도교(白道敎)라는 사이비 종교가 있었다.

가장 참혹한 사이비 종교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앙 피해자 낳는 사이비종교 폐해 여전
종교의 본질은 일상에서 마음 닦는 수행

'짝퉁'은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주로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로고를 무단으로 베껴 만든 제품을 의미한다. 오래전 중국여행 중 짝퉁 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명품시계 롤렉스를 단돈 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서 일행 중 한 사람이 기념으로 하나 구입했는데, 한 달을 못 넘기고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한자 뜻 그대로 "겉은 비슷해 보이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생겨난 신생 종교 두 곳이 정치권과의 유착, 자금 비리의혹으로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합수본)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백도교(白道敎)라는 사이비 종교가 있었다. 믿으면 장생불사한다고 선전하다가 창시자 전정예(1869~1919)가 병사하자 아들 전용해는 아버지 시신을 몰래 암매장하고 하늘에 승천했다고 선전하며 이름을 바꾸어 1920년에 백백교(白白敎)를 창설했다. 흰 두건과 가면을 쓰고 나타나 얼굴을 모르게 하는 신비주의로 혹세무민했다 "백백백의의적적적(白白白衣衣赤赤赤)"의 주문을 외우면 무병장수하고 곧 세상이 멸망할 때 자신을 믿어야만 살아남아 가릉빈가(낙원)로 갈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했다. 가산을 모두 바치게 해서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고, 돈이 없으면 첩이나 딸을 바치게 해 성 착취를 했다. 정체가 탄로 날 상황이 생기면 무참히 살해 암매장해 희생자가 300여 명이나 됐다. 가장 참혹한 사이비 종교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나는 신이다>에 소개된 사이비종교 영상을 보면서 세상이 바뀌어도 교주가 재산을 갈취하고 영생을 보장하는 메시아 노릇을 하고 신도들의 성을 유린하는 형태는 고금을 관통하는 사이비의 단골 메뉴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14만 4000명 안에 들어가면 구원받고 영생의 행복을 보장받는다는 가르침에 그 속에 들기 위해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을 버리고 '모략'이라는 포장된 교리로 거짓말을 배워서 전도의 실적이라는 유혹으로 또 다른 신앙의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종교형태를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민국 한가운데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백백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 신흥종교에 대한 눈초리가 따가운 그 시절에 소태산 대종사는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산에서 부유한 집 딸로 태어나 부산으로 시집 와서 당시 임시 교명인 '불법연구회' 회원이 된 임칠보화는 소태산대종사의 부산 방문에 환희심을 내어 식사에 초대했다.

"그대는 신심이 지극하나 그대의 부군은 아직 외인이라 가히 양해를 하겠는가?" "제가 남편에게 대종사 공양의 뜻을 말하고 생각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내 아직 실행이 철저하지 못하여 입교는 아니하였으나 그런 어른이 와 주신다면 우리 집안의 영광이 되겠다"고 하더이다." 대종사 그 숙연(宿緣)을 짐작하고 흔연히 식사의 초청에 응했다는 내용은 <대종경 실시품 28장>의 내용이다.

평범한 듯한 대화속에서 소태산의 운심처사를 엿볼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영생과 구원을 외치지 않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웃을 부처님 대하듯 공경하고, 일 속에서 마음공부의 수행을 닦아가게 하는 것이 원불교의 가르침이다. 어리석은 믿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는 오늘을 살고 있다.

/김진성 원불교 김해장유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