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가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가 정상이다 [아침햇발]

박용현 기자 2026. 2. 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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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왼쪽), 지귀연 부장판사. 사진공동취재단

박용현 논설위원

윤석열이 19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는 숱한 문제점이 있지만, 여기서는 ‘내란죄 유죄’라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려 한다. 그 의미는 여러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겠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하는 의미다. 이 유죄 판결로 조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마땅한 상황이 됐다.

민주공화국에서 입법·행정·사법 3권 가운데 주권자 국민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 사법부다. 그 결여된 ‘민주적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보완해주는 장치가 바로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을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법부 전체로 민주적 정당성이 퍼져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을 낙점하고 임명했던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해 탄핵당한 데 이어 법원으로부터도 내란 수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대법원장은 결과적으로 ‘내란 수괴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됐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파면당한 첫 대법원장이며(박근혜는 재직 중 대법원장 임명 기회가 없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내란 수괴로 처벌된 첫 현직 대법원장이다. 윤석열은 전두환·노태우처럼 더 이상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이 됐다. 이로써 윤석열을 매개로 조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던 민주적 정당성의 끈도 끊어졌다.

지난 1년간 온 국민은 사법부의 권력이 얼마나 일방적이며 막강한지 체감했다. 이렇게 강대한 ‘사법권력’은 반드시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 게 헌법 제1조 제2항의 원리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민주적 정당성이 상실된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이 계속 그 자리에서 권한을 행사해도 되느냐는 헌법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에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으로 탄생한 제6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8년 정부와 국회가 구성된 뒤 대법원장 임명이 쟁점이 됐다. 새 대통령 노태우는 1986년 전두환이 임명했던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했다. 민주화 요구에 쫓겨난 독재자가 임명했던 대법원장을 유임시키자 들고일어난 건 법관들이었다. 젊은 판사 수백명이 “민주화 열기의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아무런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스스로 물러났다. 지금 판사들에게 당시만큼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자각과 결의를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내란 이후 지금껏 사법부가 “아무런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이 직접 요구할 수밖에 없다.

조 대법원장이 이런 민주적 정당성 부재 상황을 극복할 기회는 있었다. 비상계엄 당일 그 위헌·위법성을 단호히 천명했으면 됐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면 ‘국민→윤석열→조희대’로 이어지는 민주적 정당성의 끈이 윤석열을 건너뛰어 조희대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계엄 다음날 출근길에서조차 계엄의 위법성에 대해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답을 피했다. 계엄의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소극적 저항으로 맞섰던 군인들보다 못한 헌법 인식을 드러냈다. 심지어 계엄에 협조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의혹까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후 사법부의 내란 재판은 온 국민이 목도했듯 난장판이었다. 재판을 통한 내란 단죄라는 사법부 본연의 임무조차 방기한 시간이었다. 지귀연 재판장의 황당한 구속취소와 ‘룸살롱 접대’ 의혹에도 대법원은 손 놓고 있었다. 그 흐름은 이번 지귀연 재판부의 장황하고 무디고 곳곳에 위험한 인식이 도사린 판결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지귀연조차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인정하며 유죄를 선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이 재판은 내란전담재판부의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갈 것이다. 전두환 내란 재판의 전례에 비춰 보면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자신을 임명한 윤석열의 재판에 참여할 건가, 회피할 건가. 둘 중 어느 상황이든 우리 사법 역사상 가장 기괴한 재판이 될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할 이유는 더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면 어떨까’라는 간명한 질문이 더 명쾌한 답을 줄 수도 있다. 윤석열에게 낙점받아 사법부 수장이 됐다. 그자가 내란을 일으켜 재판을 받게 됐다. 어떻게든 봐줄 방법을 도모했다. 그러나 법원도 도저히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내란 수괴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됐다. 시쳇말로 ‘쪽팔리지’ 않나. 나라면 진작에 물러나고 말았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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