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위구르족 성지 ‘카슈가르’

경기일보 2026. 2. 1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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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북쪽, 실크로드 서역북로를 달리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의 서쪽 끝에 있는 파미르고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은 타클라마칸사막의 서역남로와 서역북로 두 길이 만나는 위구르족 성지 카슈가르(중국명 카스)로 출발했다.

드디어 타클라마칸사막을 벗어나 파미르고원 인접 도시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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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카슈가르 인근의 천산산맥과 사막. 작가제공


차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북쪽, 실크로드 서역북로를 달리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의 서쪽 끝에 있는 파미르고원으로 향하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길고 지루한 곳이다. 길고 긴 사막의 모습은 수시로 바뀐다. 곳곳에 협곡도 있고 황토색 바위산도 있고 거친 모래사막도 있다. 사막의 낮 기온은 40도가 넘지만 건조해서 그늘에 있으면 견딜 만하다.

옛날 사막을 지나던 구도승, 실크로드 상인들은 뜨거운 한낮을 피해 달빛, 별빛을 받으며 늦은 오후나 야간에 이곳을 통과했을 것이다.

카슈가르에 가까이 갈수록 심해지는 공안의 검문을 무사히 마치고 어커수에 오후 늦게 도착했다. 이날은 타클라마칸사막의 서역남로와 서역북로 두 길이 만나는 위구르족 성지 카슈가르(중국명 카스)로 출발했다. 470㎞를 가야 한다. 카슈가르 도착 후 정부 기관에서 카슈가르 자동차 여행 허가를 추가로 받아야 하므로 마음이 바쁘다. 서쪽으로 갈수록 오른쪽으로 보이는 톈산산맥 높이가 낮아짐을 볼 수 있다.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초록색 초원도 조금씩 보이는 등 타클라마칸사막의 서쪽 끝자락에 왔음을 알 수 있다.

드디어 타클라마칸사막을 벗어나 파미르고원 인접 도시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서역남로와 서역북로가 만나는 도시로 고대부터 교통의 요지다.

카슈가르는 위구르족이 1940년대 독립을 선포하고 수도로 정했던 지역이다. 위구르족의 시위가 많았던 곳이라 외지에서 오는 자동차 여행자는 여행 허가를 당국에서 받아야 한다.

토요일 오후 카슈가르에 도착 후 허가 관청을 찾아가니 담당자가 퇴근하고 없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걱정이다. 어렵게 여행 허가 담당자와 통화한 결과 일요일 오전 9시에 업무를 볼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숙소로 갔다.

자동차 운전 허가를 못 받았으므로 토요일 오후 남는 시간에 카슈가르의 유명한 바자르, 향비묘, 위구르족 구도심 등은 갈 수 없다. 내일 아침 자동차 운전 허가를 받을 때까지 다른 곳은 못 가고 호텔에서 쉬면서 대기해야 한다.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국 여행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처럼 단일민족,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카슈가르 시내 풍경. 작가제공


카슈가르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이곳에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아프가니스탄, 인도, 페르시아(이란)으로 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톈산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테헤란으로 가는 코스다. 우리는 톈산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갈 계획이다.

19세기 말 청나라 최서쪽 도시인 카슈가르에 영국과 러시아의 영사관이 생겨 두 강대국 간의 스파이 전쟁의 무대가 됐다. 근세 외교사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전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 부른다.
당시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갖고 있었다. 러시아는‘남진 정책을 통해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나가려는 욕구가 있었다. 카슈가르는 러시아의 남진 정책과 영국의 봉쇄 정책의 접점이었다. 옛 영사관은 호텔로 단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1885년 영국은 우리 남해안 거문도를 2년간 무단 점령하고 해군기지를 만든 적이 있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막으려 영국이 전략적 요충지인 대한해협의 거문도를 무단 점령해 만든 것이다.

당시 영국은 조선을 청나라 영토로 오해하고 청나라 실권자 이홍장에게 거문도 점령 사실을 알려줬다. 이홍장이 이 사실을 조선의 이조판서에 알려줘 조선은 뒤늦게 영국의 점령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영국의 거문도 철수는 조선의 노력이 아니라 영국과 러시아의 조약에 의해 이뤄졌다. 주변 강대국의 무력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력한 국력을 기르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4개 강대국의 외교 문제는 19세기 말 영국,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못지않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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