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화려한 백발
요가수업 맨앞자리에 앉는 그녀
여든 넘은 나이에도 흰머리 화사
감추고 싶은 내 모순된 마음 해결
“미용실서 탈색한 거야” 뒷통수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생기는 게 당연한데, 젊지 않은데 젊어지고 싶은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염색이 하고 싶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 흰 머리가 지저분해 보여 자꾸 신경이 쓰이던 찰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요가 수업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다. 결석하는 날이 없이 평일 5회의 아침 수련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참여했다. 요가 선생님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자니 수련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된 모양이었다. 지시 멘트를 줄줄 외우고 있었고, 강사는 아니지만 초보자를 가르쳐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여든이 넘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차고, ‘이래 봬도 처녀시절에는 엉덩이에 장미 문신을 새겼다’는 농담을 하실 정도로 유쾌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백발이었다. 그녀의 백발은 화사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그 백퍼센트의 백발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는데, 검은 머리카락이 다 세어버려서 완전한 백발이 되면 전혀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의 백발은 분명 아름답고 화사했다.
수련하는 도중에도 백발에 자주 시선을 뺏겼다. 백발은 주변의 검은 머리카락이나 파마머리, 탈색한 머리카락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눈처럼 하얀 백발. 안개꽃처럼 풍성한 백발. 린넨 커튼처럼 깨끗한 백발! 블라우스에 달린 레이스처럼, 백발은 빛났다. 그래, 흰 머리가 생기는 건 전혀 서글픈 일이 아니야, 나이 드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이제부턴 염색을 하지 말고 저 할머니처럼 그대로 두어야겠어. 나도 언젠가는 완전한 백퍼센트 백발이 되겠지? 솔직하게 당당하게 내 흰 머리를 감추지 말고 다녀야겠어!
그녀의 백발이 나를 안심시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백발이 초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백발은 화려했다. 검은색이 오래되어 바랜 흰색이 아니었다. 먼 산에 쌓인 눈, 한 번도 밟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빛깔이었다. 나이 드는 건 초라하고 작아지는 일이 아니라 더 빛나고 커지는 일이라고 밝게 빛나는 화사한 백발이 나를 깨우쳤고, 그제야 나는 내 나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중년이고, 언젠가는 노년이 될 거라는 당연한 이치를. 그 할머니는 아름다웠으므로.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처럼 그 백발은 당당했으므로. 주눅들지 않았으며, 화려하고, 고고했으므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흰머리는 감추고 싶은 내 모순된 마음을 해결해준 백발이 고마워, 할머니께 칭찬을 건넸다.
“흰머리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너무 예쁘신데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가 예의 그 우렁찬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하신다.
“내 머리카락? 이 머리 미용실에서 한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의 백발이 다시 보였다. 그 백발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연의 색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채도가 다른데, 할머니의 백발은 한올 한올이 동일한 하얀 빛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감탄한 할머니의 백발이, 자연의 섭리에 고개 숙이게 한 이 아름다움이 인위에서 왔다고? 머리카락이 센 게 아니라 염색, 아니, 탈색이라고?
설 연휴를 맞아 머리카락을 염색한다. ‘흰머리가 어때서?’라고 생각하면서 젊어 보이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화학제품을 쓰지 않은 천연염색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비닐포장을 뜯어 헤나가루를 물에 푼다. 풀 냄새를 맡으며 중얼거린다.
“나중에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지면, 그 할머니처럼 검은색 대신 흰색으로 탈색을 해야지. 기죽지 말고 화려하게 늙어가야지.”
눈처럼 하얗게, 안개꽃처럼 완전무결하게 백발 탈색을 한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인위적으로 연출한 가짜 노인으로 살아가게 될 내 미래가, 듬성듬성 두피를 뚫고 올라오는 지금의 흰 머리카락만큼이나 서글프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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