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주취상태 성관계, ‘준강간’의 덫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자를 처벌하는 죄입니다. 강간죄처럼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삼지는 않지만, 피해자의 무력한 상태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강간에 준하여 엄중히 처벌합니다. 하지만 실무상 변론을 진행하다 보면, 성범죄 중에서도 양측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판단이 애매한 분야가 바로 이 준강간 사건입니다.
이는 준강간죄 성립을 위해 단순히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무력한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려 했다는 고의(주관적 요건)가 반드시 입증되어야 합니다. 즉, 객관적 구성요건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존재와,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 이를 인지하고 성관계에 이른 가해자의 '이용 의사'가 핵심입니다. 이에 피해자가 단순히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넘어, 아예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였음을 가해자가 인지했는지가 관건입니다.
최근 저를 찾아주신 의뢰인의 사례 역시 술에 취한 남녀가 모텔에 투숙해 스킨십을 가졌으나 이후 준강간으로 고소당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일 처음 만난 사이라는 점은 다소 불리한 요소였으나, ▶모텔 진입 당시 피해자의 보행 상태 ▶전후 주고받은 대화 내용 및 행태 ▶스킨십이 이루어진 시점 ▶고소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변론했습니다. 그 결과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조기에 종결하며 불송치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고 비동의간음죄가 도입되지 않은 현행법 체계 하에서, 단순히 연애 및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은 주취 상태의 성관계를 쉽사리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또 다른 쟁점은 피해자의 상태가 '블랙아웃(Black-out, 알코올성 기억상실)' 인지, 아니면 '패싱아웃(Passing-out, 의식 상실 및 저항 불능)' 인지에 대한 구분입니다. 블랙아웃은 행위 당시 의사 결정 능력은 있으나 사후에 기억만 못 하는 상태인 반면, 패싱아웃은 판단력과 저항 능력 자체가 상실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약 객관적 구성요건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존재, 즉 피해자의 상태가 패싱아웃에 이르지 않은 블랙아웃이며, 피고인 역시 그렇게 인식했다면 무죄를 주장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위와 같이 블랙아웃을 주요 쟁점으로 다투어 1심에서 준강간 무죄를 이끌어내고, 2심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판단까지 더해져 별개의 특수준강간 혐의 역시 무죄로 귀결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 형법 제299조(준강간)는 '심신상실' 상태를 이용한 경우를 규정할 뿐, '심신미약' 상태를 이용한 간음은 원칙적으로 처벌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불완전하게나마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거나, 성적 자기방어능력이 결여 내지 현저히 저하된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 준강간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비동의간음죄를 처벌하는 영미법권에서는 지속적인 소통과 명확한 동의를 강조하지만, 우리 법제는 형법 제302조(심신미약자 등에 대한 간음)와 준강간죄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이에 단순히 피해자의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하자 있는 의자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며, 피해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되었거나 현저히 저하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검사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합니다. 변호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입증 부족을 파고들어 무죄를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사후적으로 심신상실과 심신미약, 혹은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을 명확히 구별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행위 당시 당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성범죄 사건, 특히 준강간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보다 당시 당사자들의 '기억'과 '상태'에 대한 진술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술에 취한 상대와의 성관계, 특히 첫 관계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가장 현명한 행동 강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준강간의 피해사실을 주장하는 측 역시 초기부터 사실관계와 법리구성을 일관되게 정립하여 무혐의 처분이나, 더 나아가 역으로 무고죄의 형사책임을 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양혜인 법률사무소 은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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