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질문 던진 '로즈'에 열광 … 황금곰상 유력 후보 부상
생존위해 남장한 여자다룬 '로즈'
성역할 규범 뒤흔든 전개로 주목
평론가·기자 9명 중 5명 만점 줘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 '퀸 앳 시'
치매환자 성적 자기결정권 다뤄
결과는 韓시간 22일 새벽 발표

때는 17세기, 한 남자가 외딴 마을에 홀몸으로 도착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토지문서를 잔뜩 내밀며 "이 땅이 원래 내 아버지 소유였으니 나만이 유일한 상속자다. 군 복무 10년을 마치고 귀향했다"고 주장한다. 서류를 검토한 결과, 한 점의 오류도 없었다. 마을 지도자는 이방인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누가 봐도 남자인 이 사람은, 그러나 '남장 여자'였다. 본명은 로즈. 왜 로즈는 자신을 남자로 위장한 걸까.
지금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작으로 부상한 마르쿠스 슐라인처 감독의 흑백 영화 '로즈'의 기본 줄거리다. 19일(현지시간)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의 '2026 베를린영화제' 평점에 따르면 해외 언론인과 비평가들은 '로즈'에 3.3점(4점 만점)을 줬고, 9명의 평론가 및 언론인 중 무려 5명이 최고점(4점)을 매겨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사실상 '몰표'를 받은 상태다. '로즈'를 비롯해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황금곰상 후보)을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살펴봤다.
우선 '로즈'부터. 주민들이 로즈를 받아들인 이유는 토지문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시에 얼굴에 총상을 당한 탓에 로즈 얼굴은 두 뺨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주민들은 그에게 마을 구성원으로 온전히 인정받기 위한 다음 단계로 혼인을 요구한다. 마을 유력 가문과 인척이 돼야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로즈는 마지 못해 수잔나와의 혼인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초야(初夜)였다. 로즈는 '가짜 성기'를 허리춤에 부착해 아내를 속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잔나가 임신해 아이를 출산한다. 사랑 없이 결혼한 아내의 부정이었지만, 로즈는 선택지가 없었다.
평범하게 살면 그뿐이었을 로즈가, 결국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가 벌에 쏘여 기절한 것이었다. 수잔나는 결국 '남편' 로즈의 몸을 보고야 만다. 그리고 처음부터, 남편이 자신의 불륜을 인지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둘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그리고 그에 앞서 본질적인 질문, 로즈는 도대체 왜 남자 행세를 한 걸까.
'로즈'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개막 전부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2023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본상을 수상한 작품은 '추락의 해부'(황금종려상, 1등상)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심사위원대상, 2등상)였는데, 두 작품의 주연배우가 모두 '로즈'의 주인공을 연기한 독일 배우 잔드라 휠러였기 때문이었다. '로즈'는 실화에 기반한다. 17세기만 해도 전시에 여성으로 죽거나 성범죄에 희생을 당하느니, 차라리 남자 행세를 하면서 목숨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시대극을 넘어서서 '남성으로 사는 것'과 '여성으로 사는 것' 가운데 무엇이 인간으로서의 자유에 가까운가를 성 규범의 차원에서 질문한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또 다른 화제작은 싱가포르 감독 앤서니 첸의 '우리는 모두 이방인입니다'로, 현재 스크린데일리에선 2.5점으로 무난한 점수지만 'Berlinale 2026 Critics Ratings' 웹사이트에선 4명의 평론가 중 무려 3명이 만점을 주면서 화제작으로 급부상해 '로즈'를 최근거리에서 추격 중이다. 현지에서 확인한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 유망주 리디아와 직업군인 출신의 그랩(Grab) 배달부 준양의 혼전 임신 사건을 다룬다.
없는 돈을 털어 기념일에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숙박한 둘은 사랑을 나눈다. 풋풋했지만 뜨거웠던 사랑의 결과는, 임신이었다. 유력한 집안의 자녀인 리디아의 모친은 '5성급 호텔에 테이블 스무 개' 예식을 요구하고, 음식 노점상인 준양 아버지는 사돈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낭만과 달리, 리디아의 현실은 냉혹했다. 리디아는 시아버지의 10평 남짓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 사별했던 시아버지의 새 신부 비화까지 전부 한집에서 살게 된다는 점이다. 궁핍한 집에서 시댁살이 중인 어린 리디아와, 노점에서 타이거 맥주를 파는 '맥주 아줌마'인 여성 비화가 제목처럼 '낯선' 환경에 놓인다.
또 다른 문제작은 랜스 해머 감독의 '퀸 앳 시'로, 쥘리에트 비노슈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이 영화는 서정적인 영화일 것이란 예측과 달리, 시작 1분 만에 객석의 평온을 박살낸다. 주인공인 아만다는, 치매를 앓는 엄마가 간병인이자 의붓아버지인 마틴과 성관계 중인 상황을 목격한다. 둘이 살림을 합치기 전에 아만다는 "엄마는 인지능력이 떨어져 성관계에 동의할 수 없으므로, 둘의 성관계는 승낙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단 뒤였다. 아만다는 마틴을 즉각 성폭행범으로 고소하고, 마틴은 '사랑의 행위'였음을 주장한다. 아만다가 본 건 말 못하는 엄마의 사랑이었을까, 끔직한 성범죄 현장이었을까. 올해 제76회 베를린영화제 수상 결과는 22일(한국시간) 새벽에 발표된다.
[베를린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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