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 둥근밥상, 당근으로 만난 외국인 노동자

문종필 2026. 2. 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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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종필 문학평론가

입춘이다. 다가올 봄을 맞아 '당근'을 활용해 거실을 꾸미기로 했다. 첫 거래자는 젊고 친절한 러시아 청년이었다. 그에게 모니터와 책상을 구입했다. 시세보다 싸고 좋은 물건을 산 것 같아서 들뜬 마음에 이곳에 왜 왔고, 왜 파는지 물었다. 러시아 청년의 한 마디는 '고향으로 돌아간다'였다. 그때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진행 중인 전쟁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어떻게 노동하며 살았을까. 순간 머뭇거렸다.

이틀 뒤, 소파를 파키스탄인에게 팔았다. 그는 30만 원에 올려놓은 것을 26만 원에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거실 정리를 위해서는 소파를 빨리 빼야 하는 상황이니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서둘러 거래를 완료하기로 했다. 의외였던 것은 약속 시간이 다가왔을 때, 그가 청소년 아들과 동행했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하며 짐을 나르는 청년의 해맑은 눈빛에는 활기가 피어올랐다. 한국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침묵한 채, 트럭은 곧 도착할 거라고 말을 믿고 소파를 무사히 건넸다. 찬 바람이 거세게 부는 오후 8시였다.

그런데 자정쯤에 경비실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트럭 한 대가 들어가야 하니 허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근 거래는 8시에 끝났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놀랐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파키스탄인 아빠와 아들이 빌린 차량을 기다리기 위해 추운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무슨 이유로 소파를 당근 하려 했는지, 서로 다른 사연을 주고받으며 트럭이 도착할 때까지 집에서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그와 그의 아들이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 마음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당근 거래 자체보다는 관계에 마음을 더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거실은 어느 정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단골 목욕탕에 들러 쉬기로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중국인으로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일을 끝마치고 종종 7시쯤에 방문할 때면 눈치를 봐야 했다. 직원으로서는 퇴근을 준비해야 하니 이상해할 것이 없지만, 나의 경우 손님을 배려하지 않고 서둘러 마감 준비하는 것 같아 불만이 피어올랐다. 그날도 급한 마음으로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칠판에 손으로 정성껏 필사한 시 한 편을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다. 중국인 직원(?)이 손님들에게 마음을 나누려고 한 것일 테다. 이 마음이 좋아 입구에 머물러 시의 행간을 탐했다. 주변을 돌며 사진도 여러 번 찍었다. 이것을 인스타에 올릴지 말지도 고민했다. 이런 나를 뒤에서 직원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잠시 후, 그는 두껍게 옷을 챙겨 입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따뜻하겠다"라고 말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앞으로도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는 다정한 말도 덧붙였다. 그 순간 그를 향한 불만이 사그라들었다. 소파를 나눌 때 추운 바람을 셈하지 못했던 마음과 러시아인에게 조금 더 다가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 남동공단에 있는 '한식뷔페'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 여러 명이 메뉴를 보고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식당 이모에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때 조용히 갈비를 뜯어 먹으며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목욕탕에서 직원이 필사한 시는 "둥근 밥상은 각진 밥상과는 달리/ 네댓 사람도 넉넉하게 앉고/ 한 명이라도 더 앉을 것이면/ 모두들 뒤로 얼마간 물러나/ 가진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면 된다"라는 김신중 시인이 쓴 '둥근밥상'이다. 나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 준 적이 있는가. 스스로 묻게 된다.

/문종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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