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 효과’에도 비어가는 경주 원도심…황리단길 옆 금리단길의 눈물

황기환 기자 2026. 2. 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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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특수는 일부에만, 도보 10분 거리 상권은 임대 현수막만 늘어
80억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도 체감은 냉랭…관광 동선·콘텐츠 부족 지적
▲ 설명절 연휴 마지막날인 18일 오후 경주 중심상가인 금리단길에 인적이 띄엄띄엄 보이는 등 썰렁하기만 하다. 황기환 기자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8일 오후, 경주 황리단길은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나 불과 도보로 10여 분 거리인 원도심 '금리단길'의 풍경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가웠다.

'골든 스트리트'라는 화려한 조형물이 무색하게 거리에는 적막감만이 감돌았고, 상가 유리창마다 붙은 '임대' 딱지는 경주 중심상권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로 경주는 7조 4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기대하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다. 하지만 대릉원과 황리단길을 비롯한 일부에만 국한된 '반쪽짜리 특수'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현장에서 본 금리단길은 인적이 끊겨 썰렁하다 못해 고요했다. 넓게 정비된 보도블록 위로 관광객 대신 찬바람만 지나갔고, 영업 중인 점포 안에는 손님보다 주인의 한숨이 더 깊게 배어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상가 곳곳을 도배한 '임대' 현수막이다. 한때 경주 패션과 유행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제 빈 점포가 속출하며 '도넛 현상(중심부 공동화)'이 가속화되고 있다.

상인 A씨는 "APEC 이후 경주에 사람이 많아졌다고는 하는데, 우리 가게 앞은 그냥 지나가는 통로조차 되지 않는다"며 "황리단길에서 모든 소비가 끝나버리니 원도심은 철저히 외면받는 관광 사각지대"라고 토로했다.

경주시는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총 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야시장 운영, 거리 정비, 청년 창업 지원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다.

상인들은 예산이 조형물 설치 등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에만 집중돼 관광객을 끌어들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연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 설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8일 오후 경주 도심 금리단길이 인근 황리단길과는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기환 기자

상인회 관계자들은 "기존의 의류·패션 위주 점포로는 젊은 층과 외지인의 발길을 잡을 수 없다"며 "먹거리나 기념품 등 관광객 취향에 맞는 과감한 '업종 전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의 물리적 환경 개선만으로는 황리단길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분석이다.

APEC 성공 개최라는 최대 호재를 맞고도 중심상권이 무너지는 것은 경주 전체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위험 요소다.

전문가들은 황리단길의 넘치는 수요를 자연스럽게 원도심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도보 관광 벨트' 강화와 금리단길만의 특화된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80억 르네상스 사업의 방향성을 재검토하고,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금리단길의 불 꺼진 거리는 경주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천년고도의 명성이 도심 구석구석까지 온기로 퍼질 수 있도록 경주시의 치밀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