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독서출판] 책 읽는 호텔
[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독서출판평론가) 대기자]
이번 설 연휴에도 국내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숙소는 대개 호텔이다. 이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호텔에서 책을 프로모션 도구로 활용하는 곳, 고객들이 책을 읽도록 비치하는 곳, 서점을 만들어서 책을 판매하는 곳,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곳 등이 날로 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북캉스'(책+바캉스)는 호텔업계에서 책을 활용해 패키지 프로모션을 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텍스트힙 열풍에 힘입어 이름난 호텔들도 책을 호텔 마케팅에 활용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서울신라호텔은 2024년 가을에 독립서점 '어쩌다 책방'과 협업해 북캉스 패키지 '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을 출시해 도시, 예술, 산책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맞춤한 책 10권을 선정하고 패키지 고객들에게 2권씩 랜덤으로 증정했다. 이 호텔은 2025년에 뮤직 북캉스와 수영장 북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맞춤책 처방으로 유명한 '사적인서점' 및 음악 큐레이팅 브랜드 '에센셜'과 콜라보한 뮤직 북캉스 패키지였다. 북캉스 패키지 이용 고객은 맞춤책을 처방받았다. 제주신라호텔은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과 독서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북카페를 운영했다. 책은 물에 젖지 않는 방수서적으로 준비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사례로는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자리한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의 서점 운영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으로도 활용된 이 5성급 호텔의 1층 로비에는 서점 '경주산책'이 있다. 옛 호텔현대를 리뉴얼해 2020년 4월에 오픈하며 200평에 달하는 공간을 서점으로 할애한 것이다. 위탁 운영을 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전문 북큐레이터가 상주하며 직영한다. 성인 도서는 물론이고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어린이책도 충실하다. 지역 책방들과 협업하는 경주 책방전, 심야책방 북토크 등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한다. 경주시 청년 작가들이 만든 경주 감성의 엽서와 마그넷, 메모지 판매 코너도 있다. 2024년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한 '책식주의자 패키지', 2025년에는 북콘서트 입장권이 포함된 '청춘 북콘서트 패키지'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신진 소설가를 후원하여 한국문학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프린스호텔의 사업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독서경영을 하고 있으며,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 '호텔 이상의 호텔'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문화도시 서울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린다. 2025년에는 주식회사 남이섬과 부산의 중견 그룹인 협성르네상스에서도 이러한 문학 레지던시 사업을 시작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모두 세 곳의 공모를 맡아 진행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공식 후원사이기도 한 주식회사 남이섬(호텔정관루 운영)은 등단 10년 이상 경과한 문학 전 장르의 작가를 대상으로, 협성르네상스(협성 마리나 G7 호텔 운영)은 등단 3년 이상의 소설가(아동‧청소년문학 작가 포함)를 대상으로 후원한다.
해외 호텔의 작가 레지던시 사례로는 래플스호텔 싱가포르가 2019년부터 시행하는 '래플스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다.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호텔에 머물며 창작 활동에 매진하도록 지원한다. 레지던시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수제 칵테일 시리즈를 만들어 선보이는 점도 특이하다.
한편, 호텔은 아니지만 지자체들의 예술인 대상 레지던시 사업도 있다. 예를 들어, 김해문화관광재단의 김해문화도시센터 주관으로 시행하는 '2026 웰컴 레지던시 제9기 입주 작가' 공모(2026.2.10.~2.26)에서는 국내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만 25세 이상 예술가(시각, 문학 등)를 대상으로 선정해 4월부터 12월까지 레지던시 입주 활동을 지원한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지역 연계 창작 활동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해야 하며, 창작 활동 지원금과 지역 교류 네트워크, 전문가 멘토링 등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
국내 서점들 중에는 서점 매장과 더불어 유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북스테이 서점들이 전국 각지에 수십 개 산재해 있다. 전라북도 고창의 명물인 서점마을에서도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파주출판도시의 북스테이 숙박 시설 '지지향'에서는 객실마다 텔레비전 대신 책을 비치하여 독서를 권한다. 일본 소형 호텔들 중에는 호텔 로비에서 도서관처럼 책을 제공하거나 저렴한 캡슐 호텔에서 책을 빌려주는 곳들도 있다.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호텔에서 여행자들에게 책을 제공하거나 독서와 작가 강연을 숙박 패키지와 연계하고, 서점이나 북카페 운영이 확대되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책과 독서 관련 활동(저자 북토크, 관련서 서가 설치 등)은 공간의 가치와 품격을 올리기에 제격이다. 숙박 공간만이 아닐 것이다. 여느 상업 시설에서든 책은 차별화된 공간을 만드는 최고의 지적 자원이자, 가성비 높은 문화적 선택으로서 손색이 없다. 여러 장애물로 인해 독자가 책이 있는 공간인 서점과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면, 이제 잠재적 독자들이 있는 곳으로 책이 찾아가야 한다. 잠재적 독자인 고객들이 다양한 상업 시설에서 책을 만나고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책 생태계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