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강조한 ‘존엄한 죽음’…집에서 죽기 위한 ‘죽음결정권’

김찬우 기자 2026. 2. 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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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③ 정부 가정형 호스피스 확대 천명, 제주의 준비는?
지난 2월 3일 제4회 국무회의에서 호스피스 필요성에 대해 강조 중인 이재명 대통령. 사진=KTV 국민방송 유튜브 갈무리. 

평생 쓰는 치료비 대부분을 생의 마지막 연명치료를 위해 지출하는 사회.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연명을 위해 병원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 

2019년 서울대 고령사회연구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집(37.7%)이다. 그러나 정작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는 비율은 15.6%에 그치는 현실이다. 

집에서 죽음을 맞길 원하지만, 현실은 병원에서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하며 연명하는 삶.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 고통받는 가운데 오로지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연명의료 중단 제도가 이재명 정부 들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적 관심은 2015년 7월, 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2017년 연명의료결정 제도가 시행되면서 일찍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치료를 포기하는 두려움과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연명치료 중단 활성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비를 지출하지 않도록 해 환자 본인과 가족의 고통을 덜고, 또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대통령 지시에 맞춰 보건복지부는 말기 및 임종 환자의 가정 내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충분히 지원하기 위해 오는 3월부터 가정형 호스피스 수가를 인상키로 했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황지현 원장. ⓒ제주의소리

# 집에서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준비, 제주는?

앞선 조사 결과처럼 가정에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병원이나 시설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스피스 제도가 아직까지는 입원형 위주로 운영되는 가운데 가정형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나 가족의 선호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2016년 3월 1차 시범사업으로 첫걸음을 뗐다. 이듬해 2차 시범사업과 자문형 호스피스 시범사업도 이뤄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 내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 병의원은 제주대학교병원과 황지현 원장이 운영하는 메디오름가정의학과가 유일하다. 

황 원장이 운영하는 의원은 지난해 9월 10일 보건복지부로부터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아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의원급으로는 제주 최초이자 유일한 가정형 단독 호스피스 운영 기관이다. 

이 때문에 황 원장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쉬는 날 없이 제주 곳곳을 다니고 있다. 평일 중 며칠은 오전에만 의원 외래진료를 진행, 오후에는 호스피스 환자 가정을 방문한다. 휴진일인 주말이 되면 하루 온종일 호스피스 환자를 살피러 다닌다. 

제주대학교병원이 지역 유일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과 병원급 가정형 호스피스를 운영 중이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서귀포시 환자들은 지역 내 호스피스 기관이 없어 서비스를 누리기 어렵다. 

제주대병원의 호스피스 병상 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9개로 같다. 해마다 환자가 늘어나면서 2024년 기준 병상 가동률은 85%를 기록했다.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하거나 입원 직후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는 직원 증언이 전해진다.
호스피스 환자에게 설명 중인 황 원장. ⓒ제주의소리

# 존엄한 죽음도 선착순?…"공적 호스피스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주도의 기대수명은 83.7년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다. 이는 다른 지역보다 장기 요양 수요가 높고 만성질환에 따른 의료비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제주 만성질환 진료비는 2020년 71조원에서 2023년 90조원으로 급증했다.

또 장기 요양 서비스 이용 실태를 살펴보면 전국 평균 시설급여 이용 비율은 약 30%였지만, 제주는 약 50%에 이르렀다. 두 가지 자료를 놓고 보면 결국 생애 말기 돌봄 대상자들이 아직도 병원 진료비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호스피스 제도와 관련해 아직 제주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돌봄 관련 '제주가치돌봄'과 의료 관련 '건강주치의' 제도가 있지만 이는 모두 '생존'을 위한 것이다. '죽음'을 위한 마땅한 제도나 지원책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이에 황 원장은 '공적 호스피스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형 호스피스와 방문진료 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돌려 필수의료가 되도록 한다면 생애 마지막 3개월 간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 의사 개인의 힘으로 가정형 호스피스 의원을 개설, 운영할 수 있도록 보험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 원장은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키 위해 가정형 호스피스를 공공의원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공공의원은 방문형 진료를 위주로 운영돼 실질적인 초기 투자금이 적고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인건비에 대한 유지비용만 들어가기 때문에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가 가정형 호스피스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 수가를 현실화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환자 가정 방문, 임종 돌봄, 전화상담 등 상시적 환자 관리에 대한 수가를 인상, 가정형 호스피스 전반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가정 방문 전 차량 트렁크에서 물품을 보충하고 있는 황 원장. 주 7일, 휴무 없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 가정형 호스피스 정부 지원↑…지자체 관심도 '절실'

정부 움직임에 발맞춰 제주도의 관심도 절실하다. 황 원장은 "3월부터 의료돌봄 통합지원 서비스가 시행될 예정인데 의료인 입장에서 의료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제주도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의료돌봄 통합지원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지자체가 중심이 돼 돌봄 지원을 통합 연계해 제공하는 사업이다. 

황 원장은 "도민 혜택을 위해 재택 방문 및 호스피스 진료가 가능하다는 홍보가 이뤄져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된 모습"이라며 "적극적인 모습은 차치하고 아무 움직임이 없어 실망스럽다. 제주도민이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한 의료적 혜택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원하는 치료 수준과 죽음의 장소를 명확히 표현하고 모두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토대로 가족 간 합의와 의사 존중 문화를 만들어가야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안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5일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와 정민구 의원(더불어민주당, 삼도1·2동)이 주최한 '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제도 활성화 정책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전문가 제언이 쏟아졌다. 

△자문형 호스피스 활성화 △제주 권역 호스피스 개소 △지역통합돌봄센터 내 말기돌봄 상담·조정팀 설치 △지역자원 적극 연계 △제주형 생애말기 돌봄지원센터 설치 △찾아가는 연명의료 상담 서비스 운영 △의료·요양·복지기관 간 정보 연계 체계 구축 등 제안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제주지역은 전통적으로 자택 임종 문화가 강했던 곳으로 많은 도민들이 집이나 마을에서 삶을 마무리하길 원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는 어렵다. 이에 공공의료 관점에서 행정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남편이자 메디오름 연구소장인 김진덕 씨는 10시간이 넘는 운전으로 황 원장이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매일 함께하고 있는 든든한 존재다. 황 원장은 이동 중에도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