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주말마다 놀러 가는 이유
처음에는 막 돌잔치를 마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미안했다. 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세상의 전부인 엄마, 아빠와 떨어져 매일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일곱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 걱정도 되고 죄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고 아빠는 작업실에서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아들 먹일 식재료 값과, 한동안은 더 입어야 할 기저귀 값과,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붕붕 장난감 값은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한 쪽이 아기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 방법도 있겠지만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각자의 커리어를 다 내려놓는다는 것 또한 슬프고 두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그냥 미안해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며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밖에서 일 하는 게 꼭 육아보다 쉽다고 말할 수만은 없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육아에 쓰는 근육과 일에 쓰는 근육이 다른 느낌이랄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자극하는 것보다 여러 부위를 번갈아 단련하는 것이 그나마 덜 힘들 듯이, '육아 근육'을 하루 종일 사용하다가 그 하중을 하루에 몇 시간동안이라도 '일 근육'으로 옮길 수 있게 되니 삶이 조금 덜 고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미안해진다는 게 문제지만.
그렇게 반 년 넘는 시간이 흘렀고, 19개월이 된 아들은 주말 아침에도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앉아 신발을 신겨주길 기다릴 정도로 어린이집 다니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미안한 마음과 평일 내내 떨어져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다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 마음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와 아내는 주말마다 아들 데리고 어디를 가 볼까 고민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여기 저기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들 놀 거리가 있는 쇼핑몰이나 수족관 같은 곳은 이제 그 안의 지리를 외울 정도로 많이 갔고, 흔히들 데려가는 키즈카페나 아기 수영장 같은 데도 여기 저기 찾아 다녔다. 가끔은 조금 멀리 가기도 했고, 그 중에 몇 번은 조금 무리수를 던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백일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양평 키즈펜션에 갔던 일, 9개월 된 아기에게 기린과 사자를 보여주겠다고 굳이 에버랜드에 데려갔던 일은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들은 어차피 지금을 기억도 하지 못할 텐데 굳이 어딜 데려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기어이 나가서 우리도 아들도 고생하다 집에 돌아오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학교 선배 성현이형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형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엄마 아빠랑 어딜 가면 즐거운 일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아이가 알아도 되지 않을까? 한 살 때 놀러갔던 기억이 그래도 두 살 까지는 남아 있을 거고, 두 살 때 놀러갔던 기억은 세 살 까지는 남아 있을 거 아냐." 그 말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 아빠랑 모래 놀이를 하고 놀았던 기억을 아들이 스무 살까지 간직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좋았던 기억 하나가 잊히기 전에 또 다른 좋은 기억을 만들고, 또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좋은 기억을 만들며 살아간다면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아들의 유년을 행복하게 채우고 나면 어른이 되어 그 안에 들어 있던 행복한 기억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더라도 엄마 아빠랑 어린 시절에 행복하게 살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들의 기억만 소중한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내와 나 역시 각자의 지금을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다. 아들이 수족관에서 보라는 인어 쇼는 안 보고 구석에 비치된 소화기만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푸념했던 일, 날이 선선해졌을 줄 알고 찾아간 허브농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아들을 안고 경사로를 올랐던 일, 애써 찾아간 놀이공원에서 구경은 안하고 유모차에 누워 잠든 모습을 보며 허탈해 했던 일은 모두 엄마와 아빠의 행복한 기억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거다. 아들이 기억 못하면 어떤가. 우리가 그때 그랬었다며 추억하며 웃을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이번 주말에도 어디 갈지 고민이 된다. 아직 날이 추워 갈 곳이 많지 않아서 공들여 검색을 하고 머리도 많이 써야 한다. 아들은 잘 걷지만 아직 엄마 아빠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 주지 않고, 그렇다고 유모차를 태우려 해도 제 발로 걷겠다고 떼를 쓴다. 안아들고 다니기에는 이제 너무 무거워서 여러모로 힘을 많이 빼야 한다. 누군가는 '굳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끔 내 안에서부터 그런 말이 들려오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번 주말에도 굳이 고생을 할 거다. 기억 같은 건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칼럼니스트 강백수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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