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마작, 용을 만들어 승천시켜라

한겨레 2026. 2. 1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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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문화로 뜨는 오프라인 마작
중국에서 탄생한 4인용 놀이
온라인게임·영화 등으로 친근
코로나 이후 마작 모임 늘어
배우고 게임하며 느슨한 연대
‘정동마작교실―선데이 소셜’에서 마작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들. 최근 마작이 색다른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차르르, 타닥타닥.’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 거센 바람이 숲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작패 136개를 섞는 소리다. 테이블에 펼쳐진 마작패에는 한자와 대나무, 새 등이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다. 손에 꼭 쥐어질 정도로 작은 크기의 마작패를 네명이 각각 13개씩 가져가면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탁탁’ 청아한 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열린 ‘정동마작교실―선데이 소셜’의 풍경이다. ‘정동마작교실’은 문화비평가 이명석(55)씨가 운영하는 마작 교육 프로그램이다. ‘선데이 소셜’은 이씨의 강연 뒤 이뤄지는 실전 모임이다. 마작을 좋아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마작을 즐길 수 있다.

“마작을 배운 지 6개월 됐어요. 영화 ‘색, 계’에서 마작을 하며 인물들 간에 신경전이 오가는 장면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시작했죠. 규칙이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자주 했던 보드게임 ‘루미큐브’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빠져들었죠.” 김하경(29)씨의 설명이다. 마작에 매력을 느껴 친구들에게도 권유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황혜림(29)씨가 바로 그 ‘친구들’ 중 한명이다. 황씨는 지난달에 ‘정동마작교실’에서 마작 기초 수업을 마치고 ‘선데이 소셜’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마작을 즐기는 권영목(60)씨는 자녀가 추천해 마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딸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같이 하고 싶었는데 막상 딸은 해외로 가버려서(웃음) 일요일에 여기에 나와 마작을 즐기고 있죠.”

최근 색다른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마작. 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마작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4인용 놀이로, 카드게임과 유사해 보이지만, 플레이하는 도구부터 차이가 크다. 일찍이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일본에서 마작을 처음 언급한 이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화투에 밀려 힘을 못 쓰다 최근에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김씨를 비롯해 황씨, 권씨 모두 마작을 배운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담은 없다. 마작은 운의 요소가 작용하는 게임이라 초보자도 이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헷갈리는 규칙은 바로 물어볼 수 있다. 서로 설명해주고 또 토론하는 게 마작의 매력 중 하나다. 규칙을 모르면 강사 이씨를 호출해 물으면 된다.

처음 만나는 이들도 마작 테이블에 앉아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하는 것, 이게 지금 한국 마작의 특별함이다. 마작이라고 하면, 담배 연기로 가득한 지하 게임장에서 큰돈을 건 내기 도박판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실제 과거엔 마작을 순수한 게임으로 즐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풍경이 목격되고 있다. 4~5년 전부터 마작은 빠르게 음지에서 양지로, 사행성 도박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마작을 즐기는 20~30대도 늘고 있다. 대학교에선 마작 동아리가 생겨났고 이들 간 교류전이 펼쳐졌다. 정년퇴직한 60대 사이에서도 건전한 취미로 빠르게 입소문이 나는 중이다.

복잡한 마작 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화비평가 이명석씨(맨 왼쪽)와 수강생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복잡한 마작 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화비평가 이명석씨(맨 왼쪽)와 수강생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20년 넘게 마작을 즐기며 동호회부터 마작 교실 등을 주최해온 이씨는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느낀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최근 마작이 트렌드가 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계기는 코로나 사태였죠.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지인들이 모여 즐기는 마작이 재조명됐습니다. 또 온라인 마작 게임인 ‘작혼’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를 통해 마작을 접한 20~30대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계기죠. 온라인 게임으로 마작을 접하고 마작의 재미를 느낀 이들이 손으로 하는 오프라인 마작에 관심을 갖고 마작 교실을 찾기도 합니다. 최근 젊은 층에게 마작은 보드게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어요.”

마작은 물리적 공간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할 때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에선 마작의 규칙이나 승패 등이 자동으로 계산되지만 손마작에선 그 모든 과정을 플레이어가 직접 해야 한다. 자칫 복잡하게 느껴질 이 과정을 서로 대화를 나누며 해결한다. 또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원하는 방향대로 게임이 흘러갈 때 생기는 쾌감도 특별하다. 마작패의 질감과 소리를 즐기며 손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게임, 이것이 마작의 매력이다.

4인용 놀이 게임인 마작.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김씨는 게임 이상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한다. “마작은 ‘용을 승천시키는 게임’이에요. 머리에 몸통을 붙여 먼저 용을 완성하는 거죠. 자기 순서에 마작패를 하나 가져오고 하나를 버리는데, 이 과정을 ‘산에서 따 와 바다에 버린다’고 해요. 마작을 하는 판 자체가 거대한 자연이자 인생인 거죠.” 게임 용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면 마작의 매력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마작의 이러한 아날로그적 면모는 자극적인 온라인 세상에 지친 이들이 마작에 눈 돌리게 한 이유다. 도파민 분출이 목적인 자극적인 규칙과 이용자들끼리의 거친 리액션이 주를 이루는 온라인 게임에 피로를 느낀 이들에게 마작은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작 모임은 친목도가 높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씨는 “개인적인 얘길 나누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며 “일종의 ‘느슨한 연대’로, 동호회의 친목이나 교류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특히 추천한다”고 말한다.

마작이 각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게임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화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선 1920~1930년대 마작이 문화 코드로 특히 돋보였다. 모더니즘 시대 상하이 등지의 상류층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마작이 작동했다. 마작을 통해 그 시대 특유의 사회상, 의상, 식문화 등을 엿볼 수 있다. 마작 입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영화가 꼽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지난해 재개봉한 영화 ‘색, 계’의 마작하는 장면. 엔케이컨텐츠 제공

량차오웨이(양조위)와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 ‘색, 계’(2007)와 역시 량차오웨이가 장만위(장만옥)와 함께 나오는 영화 ‘화양연화’(2000)가 대표적이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차와 음식을 옆에 놓고 마작을 즐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가득한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 ‘조이 럭 클럽’(1994)에는 여성들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마작이 차용된다. 김희애가 열연한 드라마 ‘밀회’(2014)에서도 상류층의 폐쇄적인 계급 장치로서 마작이 다뤄진다.

‘웨이 티하우스 & 레스토랑’에선 마작을 체험하며 차나 음식을 즐기는 이벤트를 종종 연다. 주최 쪽 제공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웨이(WUI) 티하우스 & 레스토랑’은 마작을 체험하면서 중국의 차와 술, 음식을 즐기는 ‘기연마회’(奇緣麻會)를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독특한 중국식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이곳에서 마작을 배우면서 차와 술을 즐기고 있노라면 중국 영화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곳을 운영하는 신금호(45) 기연컴퍼니 대표는 “고객이 마작이라는 게임을 통해 중국의 식문화를 ‘체험’하도록 하고자 한다”며 “계절에 맞게 마오타이부터 코냑, 맥주 등의 주류와 완탕면, 팥춘권 등의 딤섬을 페어링해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기연컴퍼니는 신년 선물세트로 중국 술 마오타이를 담은 마작 모양의 봉봉 초콜릿 ‘기연방 㝀(hǎo) 블랙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마작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마작을 배울 수 있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곳의 문을 두드려보자. 일일 마작 강좌가 열리는 곳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최근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마작 클래스도 늘고 있다.

안인용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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