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기와로 엮어낸 지붕의 고귀함 [전원생활 I 장인의 숨결]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의 기와전승관에서 만난 이근복 선생(75)이 말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묵직한 기와에서 번와장이 짊어져온 책임감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불국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경복궁과 덕수궁 등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유산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화재로 소실됐던 숭례문 복원 작업에도 참여하며 ‘이근복’이란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알렸다. 한국 전통 목조건물 대부분에 숨결을 불어넣은 그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번와 기술자다.
“기와 몇 장을 잘못 얹은 탓에 빗물이 새고 지붕 아래 서까래까지 썩어가는 집을 수없이 봤어요. 그걸 보며 기와를 제대로 이어야만 건축물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실제로 물만 닿지 않는다면 전통 목조건축물은 수백 년이 지나도 원형을 유지할 수 있어요.”
번와에 눈을 뜬 이 선생은 아버지의 곁에서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문득, 진정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선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서울로 가야 함을 직감했다. ‘궁궐의 지붕을 잇겠다’는 큰 꿈을 품은 채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수소문 끝에 5대 궁궐의 번와 작업을 도맡았던 고(故) 기성길의 문하생이 됐다. 1970년대 무렵의 일이다.
“기술을 전수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지게로 흙을 나르고, 지붕 위로 흙을 던져 올리는 허드렛일만 했어요. 이대로는 기술을 배울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남들이 쉴 때도 기와 잇는 연습을 했어요. 점심시간이 한 시간 주어지면 20분 만에 서둘러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은 지붕에 올라 기와를 이었어요. 혹여나 스승께 혼날까 봐 연습 후엔 꼭 원상복구를 해놓고 내려왔어요.”
한번은 스스로 보기에도 기와가 잘 이어졌다 싶어 그대로 둔 채 내려왔다. 하지만 결과물을 본 스승은 가차 없이 기와를 모두 뜯어버렸다. 자를 쓰는 목수와 달리, 번와장은 오직 육안으로 지붕의 면을 잡는다. 바람의 방향과 지붕의 곡선, 햇빛이 비치는 각도까지 읽어내는 감각이 몸에 배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 수만 번의 연습을 거듭한 끝에, 남들이 10년 걸려 배울 기술을 4년 만에 터득했다.
“만 장의 기와를 얹는 것보다, 기와 한 장을 손끝으로 느끼며 어떻게 놓을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새가 날개를 펼치듯 추녀의 선이 살아 있는 지붕이 완성되고,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견고함을 갖추게 돼요.”
전국의 현장을 누비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 선생은 2008년 국가무형유산 번와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지붕에 적심을 적게 넣으면 그 빈 자리를 모두 흙으로 채워야 해요. 나무보다 무거운 흙의 비중이 커지면 지붕 전체의 하중이 늘어나게 되죠. 결국 서까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고 추녀가 처지면서 건축물의 균형이 깨져요. 실제로 보수가 필요한 궁궐 지붕을 보면 흙의 양이 과해 지붕이 뒤틀린 경우가 많아요. 적심 박기를 적절히 잘해야만 건축의 수명이 온전히 유지돼요.”
그의 말에서 사람이 오래 살 만한 집을 만들고자 하는 번와장의 고집이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만드는 건 번와장의 자존심과 다름없다.
“담 밖에서 보이는 한옥은 기와지붕이 전체 건축물의 70~80%를 차지해요. 시각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곡선이 아름다워야 보기가 좋겠죠. 저는 주변 지형지물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곡선이 제일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한옥이 들어설 자리가 산간이냐 평야냐에 따라 용마루의 곡률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해요. 지붕의 선을 멀리서 한번 보고, 가까이서도 한번 보고, 주변의 산과 하늘을 살피며 이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가장 예쁜 곡률을 찾아내는 것이죠.”
그 결과 한옥 기와지붕의 모양은 보는 이에게 자연으로 회귀한 듯한 편안함을 안긴다. 경사가 급하고 웅장한 중국의 지붕이나, 선이 날카롭고 직선적이어서 단정한 느낌의 일본 지붕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만의 아름다움이다.
이런 그에게 1997년 보수 작업을 한 숭례문이 이듬해 화재로 소실되는 과정을 지켜본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물이 건물 안으로 새지 말라고 기와를 얹는 건데, 지붕 위에서 물을 뿌리고 있더라고요. 그러니 불이 잡히질 않죠. 숭례문에 바짝 다가가 아래에서 서까래 쪽으로 물을 뿌려야죠. 고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답답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굽은 소방 호스를 펴며 진화를 돕는 것뿐이었어요.”
고건축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선 그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그가 사재를 털어 기와전승관을 세우고 기와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스승 곁에서 눈치껏 기술을 익혀야 했던 본인의 고단했던 시절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 선생은 문하생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하게 전수하려 노력한다. 기와전승관에 경상도 기법, 서울 기법 그리고 문화재 시방서 기준에 맞게 지은 세 동의 한옥 모형이 있는 것도 제대로 기술을 보여주고 전승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최근 한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기본을 무시한 채 날림으로 지어지는 한옥들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한옥 건축 프로젝트의 자문위원으로 가보면 저렴한 비용으로 한옥을 지으려 해요. 그러면 말하죠. 집을 짓는 이유가 뭡니까? 사람이 살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 살려면, 사람이 살 수 있게끔 집을 지어야지요.”
한옥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장인이 있기에, 한옥의 고귀함이 여전히 지켜지는 듯하다.

글 윤혜준 기자 I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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